세상에 교회만큼 영광스러우면서도 교회만큼 말도 많고, 칭찬도 듣지만 욕도 많이 먹는 모임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교회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교회에 대한 기대는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 은혜도 받지만, 시험에 들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완벽한 교회란 존재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땅에서는 완벽한 교회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많은 교회가 등장합니다. 많은 교회들은 사도바울과 사도들의 선교 활동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아도, 어떤 교회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요즘 새벽마다 묵상하는 고린도 교회를 보세요. 문제 투성이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숫적으로 부흥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역동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성장이 더딘 교회였습니다. 성도 간의 시기와 분쟁이 있었고, 부활에 대해 의심했으며, 도덕적으로 성숙되지 못해서, 사도 바울로부터 질책을 들어야 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빌립보서의 수신자인 빌립보 교회도 바울이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한 훌륭한 교회였지만, 완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교만한 마음을 품고 다른 성도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율법주의, 분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잡고 일하시는 금촛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자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대해 비판을 위한 비판 빠져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떠나서도 안됩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으면 있는대로, 불완전하면 불완전한대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며, 인내하며, 기도하며,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교회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하나되는 훈련을 받기 원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문제 많은 교회에서 오히려 신앙 인격이 연단되고 성숙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교회는 마치 가족과 같습니다. 완전한 가족은 없습니다. 자녀들 중에 perfect 자녀가 어디 있겠어요?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부족한 사람이니 가족에서 나가라 하겠습니다. 또는 만약에 어떤 자녀가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면서, 얼마 동안 가족을 떠나 살면서 완전해진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겠다 하면, 부모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래 좋은 생각이다, 가출하여 살면서 완전해진 모습으로 돌아오너라라고 말할 부모가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 아들아, 완전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집을 나가지는 말아라라고 말할 것입니다. 집에서 훈련 받아야지 어디서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서 신앙의 훈련과 성장을 받을 곳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교회라고 해도, 안에서 서로 부데끼면서 성숙해져가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변하는 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입니다.

 

빌립보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고, 수신자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이었습니다.

1:1-2절을 보세요.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이라고 하면서 빌립보 교회에 인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규정할 , 가장 흔하게, 또한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종은 가장 천한 신분이요, 주인에게 철저히 소속된 물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면서 일부러 자신을 소개할 ,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자원하여 종으로 남겠다고 하였을 , 문이나 문설주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종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스스로 종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은 일생 주인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정하기 위해 송곳으로 귀를 뚫었던 것입니다.(21:6)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의 예수님과의 관계, 철처한 소명의식을 엿볼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예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어디든 보내면 가겠다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목회자들, 선교사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는데, 목회자나 선교사만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는 각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사도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주의 일을 , 동역을 중시했는가?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 이름을 의도적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냥 그리스도 예수의 바울은이라고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스도 예수의 바울과 디모데는이란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 수고하는 디모데를 같은 동역자로 인정하며, 함께 동역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사말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몸의 건강을 많이 기원하는데, 몸의 건강보다 은혜와 평강이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하며, 평강이란 환경에 상관없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 나아가서 관계에 임하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거룩하여졌으며,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어떻게 세워졌는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2 선교 여행 기간에 성령의 역사로 유럽 땅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계획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16장에 의하면, 바울은 오늘날 터키 지역인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아시아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전도하는 것을 막으시고, 방향을 바꾸어 유럽으로 향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16:6-10(새번역)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항구) 이르렀다.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게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하고 간청하였다.  환상을 바울이 뒤에, 우리는 마게도냐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게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 디모데와 같은 사역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네압볼리를 거쳐 16Km 걸어서 유럽의 성인 빌립보로 들어가게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바울의 발걸음이 유럽으로 향할 , 유럽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은 겨자씨와 같이 보이지 않게 시작되지만 결과는 말할 없을 정도의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빌립보는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째 가는 도시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퇴역 군이들이 많이 있었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요충지였습니다. 오늘날은 그리스에 속해 있으며,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지고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는가? 사도행전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명의 중요한 회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    루디아의 회심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들어갔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유대인 회당도 없었습니다. 회당이 있으면 안식일에 회당에 나가서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는데, 빌립보에서는 그렇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없을까 하여 강가로 나갔는데, 여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여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중에 루디아라는 여자가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심으로써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루디아는 소아시아 두아디라 출신 자주 옷감 장사였습니다. 루디아가 빌립보 교회의 신자가 되었고 그의 집을 모임 장소로 내어 드렸습니다.

(2)    귀신 들린 여종의 치유

빌립보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자가 고침받게 사건입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자가 몇날 며칠을 바울 일행을 뒤따라 다니면서, ‘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서서 나오라즉시 치유되었고,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가히 상상할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귀신 들린 여자가 고침받은 것은 감사한 일인데, 일로 인해 여종의 주인들이 크게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귀신이 나감으로써, 점치던 신통한 능력도 사라졌고, 돈벌이 수단도 사라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장터의 관리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 사람들은 유대인들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이상한 풍속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일로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많이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것입니다.

억울하고, 맞은 상처는 욱신거리고, 지하 감옥에서 도저히 기뻐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바울과 실라가 그날 밤에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송하였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없었다면 이렇게 행동할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기쁨이 없고 마음이 불안한 분이 있다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귀신들렸던 여종도 빌립보 교회의 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3)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회심

그런데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그날 중요한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회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모르지만 직책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였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으며 죄수들은 듣고 있었습니다. 간수는 평상시처럼 아무 걱정없이 졸다가 잠에 빠졌습니다. 갑자가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들이 열렸습니다. 아마 강도 5.0이상의 강진이었던 같습니다.

자다가 깨난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친 알고,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급히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당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간수는 두려워 떨면서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있습니까?” 물었으며, 바울은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유명한 말을 남기게 것입니다.

그날 밤에 빌립보 간수와 그의 가족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세례까지 받게 것입니다.

간수와 그의 가족이 또한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운 교회라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바다 건너 빌립보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루디아의 마음을 열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지진을 일으키고 옥문을 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기적은 지진과 옥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도의 문이 열린 입니다. 유럽의 선교지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여러 사람들이 믿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될 , 전도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십니다.  복음이 전해질 , 가장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바울은 여러 교회들을 위해 기도했고, 모든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에 대한 감사와 기도는 특별했다 있습니다.

1:3-4절을 보세요.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구절에는 빈도를 나타내는 부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간구할 때마다, 항상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는 특별히 항상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간구했다라는 것입니다.

 1:8절에서도 바울의 특별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시니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렇게까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사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에 대해 1:5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특별하게 생각하며 기쁨으로 기도한 이유는 처음부터 한결같이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립보 교회는 복음 전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 바울의 선교 사역에 기도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후원했습니다.(4:15-16) 그것도 여러 도와주었습니다.

한두 돕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한결같이 돕고 후원하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한결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도 바울의 사명이었으며,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교회의 존재 목적인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변함없이 계속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예배도 드리고, 성경도 배우고, 구제 활동도 하고, 성도 간에 서로 돕는 일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우선순위로 해야 일은 복음에 관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는 일과,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주신 지상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오늘 우리가 새해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한번 교회의 거룩한 사명을 새롭게 깨달았으면 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귀한 사명을 깨닫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복음에 관한 일에 동참하는 것에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관한 일을 착한 이라고 하면서, 착한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요, 하나님이 마무리하실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세상에 착한 일은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도 착한 일이요,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돕는 일도 착한 일이요, 시간을 내서 재능을 기부하는 일도 착한 일입니다.

그러나 착한 중에 착한 일은 복음에 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건져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 재림 때까지)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 7절에서 다시 , 자기가 빌립보 교회를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빌립보에서도 옥에 갇힌 적이 있고, 지금 빌립보서도 로마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이런 바울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는 언제나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있는데, 빌립보 교회는 이런 바울의 선교에 기꺼이 동참하게 것입니다.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것입니다.

아마 기도와 물질로, 격려의 말로 바울의 선교 활동에 동참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는 선교사 혼자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동역하는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함께 동참하는 교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를 위해 물질로 후원하고, 힘들고 어려울 , 격려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복음 전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있습니다. 외로움과 싸워야 합니다. 비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추방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후원 교회는 선교사가 어려워하고 힘들어 , 오히려 기도하며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믿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11절은 바울의 기도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편지에서 기도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교회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서 활동은 제한을 받았지만, 기도는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악한 사탄은 선교사를 옥에 가두면 복음 전파를 막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복음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감옥에서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했으며,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교회를 세워나갔던 것입니다.기도와 말씀은 교회르 세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의 일을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복음의 일에 참여할 있습니다. 어떤 것도 복음 전도를 막을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히려 기도와 편지도 위해한 일을 했습니다.

요즘 시대는 교통의 발달로 얼마든지 직접 선교사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물질로 후원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서 얼마나 쉬워졌는지 모릅니다.

기도야말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멀리 가지 않아도 주위에 복음을 들어야 민족들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번에도 85 민족이 섞여 산다고 합니다.

은퇴 후에도 얼마든지 선교에 동참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시니어 단기 선교팀을 만들어 파송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한해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도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전에도 잠깐 간증하였지만, 제가 목회자로서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다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는 , 복음 때문에 작은 고난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만약에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에 편지를 썼다면, 어떤 내용으로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칭찬일까 책망일까? 과연 사도 바울이 내가 어번오펠라이카 한인 교회를 생각할 , 하나님께 감사하고, 항상 기도하는 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변함없이 복음 전파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에 모양 모양으로 동참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