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세월이 빠르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이에 따라 세월의 흐름을 다르게 느낀다고 합니다.

어렸을 ,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1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으면서 시간의 흐름이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50,60 넘어가면, 나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다섯 또는 먹는 것처럼 빠르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정연복시인의 송년 기도라는 시입니다.

 

주님,

해도

정말 꿈결같이 흘러갔습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삶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게 하소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겸손히 헤아려 보게 하소서.

 

삼백 예순 다섯 동안

사랑의 키는 얼마나 자랐는지

믿음의 뿌리는 얼마만큼 깊어졌는지

소망의 탑은 얼마쯤 높아졌는지

조용히 살펴보게 하소서.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과 격려를 보내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게 하소서.

잠시라도 미운 마음을 품었던 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의 말을 전하게 하소서.

 

사무엘 상을 펴면, 사람의 출생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가교역할을 했던 사무엘선지자의 출생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한국에선 출생률이 1.3이하로 떨어져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만, 가정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엘가나라는 사람에겐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의 이름은 한나, 다른 아내의 이름은 부닌다였는데, 브닌나에겐 자식이 있었는데, 한나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지만, 그에겐 자식이 없는 것이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에서, 한나가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이셨다라고 말하는 점입니다. (삼상1:5)

삼상1:5, “(남편이)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한나의 괴로움은, 아이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의 적수인 느닌나로부터 문제로 괴롭힘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매년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더욱 브닌나로 인해 조롱을 받아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남편인 엘가나가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픕니까? 내가 그대에게 아들보나 낫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한나는 마냥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기도로 승화시켰습니다. (일이 맘대로 안풀리고, 고난이 찾아오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있게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익하다고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제발 아들을 달라 기도하면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아들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요즘으로 하면, 아들을 평생 해외선교사로 바치겠다는 서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로부터 1 후에 아들을 낳게 되었고, 아들이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한나가  아들을 낳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 기도를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문 중에서 마리아의 기도와 함께 굉장히 유명한 기도문입니다.

한나는 경험적으로 깨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삼상2:1-7,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꺽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1-7)

 

한나의 기도의 주제는 인생을 역전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 천한 자를 높이시지만, 교만한 , 부한 자를 가난하게도 하실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유함으로 인해 교만할 이유도 없고, 현재의 가난, 불행으로 인해 절망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현상황을 역전시키실 있으시다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나가 경험한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 인생의 상황을 역전시킬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상 부분에 사무엘의 출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몰락해가는 제사장 가문 이야기 나옵니다.

그의 가문은 엘리 제사장 가문입니다. 엘리 가문은 제사장겸 사사로서 당시 가장 유명한 가문이요, 가장 존귀함을 받던 가문이었습니다.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으로서 존귀한 직분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들이 여러 가지 부끄러운 죄악,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는 결코 저지르지 말았어야 악행들을 저지름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의 행실이 어느 정도 나빴는가?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착복하였습니다. 아직 하나님께 바쳐지기도 전에 종들을 시켜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낚시하듯이 걸리는 대로 가져갔으며, 심지어 기름을 태우기 전에 고기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가져가세요라고 하면, ‘아니다, 지금 당장 내놓으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겠다라고 하며 행패를 부렸던 것입니다.

삼상2:17, “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아들의 악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알 숭배자들처럼, 성막문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음란한 행위까지 일삼았던 것입니다.

삼상2:22--25절입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본문 삼상2:27-36절은 멈추지 않았던 엘리 집안의 악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셔서 전해준 심판의 말씀, 저주의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조만간에 성취되었습니다. 사무엘4장에, 엘리 집안에 얼마나 철처히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역사의 한토막이 되었습니다.

( 얼마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남, 1 전투에서 패함, 이스라엘 군사 4000 가량이 죽임을 당함, 2 전투엔 법궤까지 동원됨,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감, 승리할 알았으나, 뼈아픈 패배를 당함, 이스라엘 군사 3만명이 죽임을 당함, 법궤도 빼앗김, 홉니와 비스하스가 전사함, 슬픈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의 죽음, 비느하스의 내의 조산과 과정에서 산모가 죽게됨, 죽으면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가봇이라고 지음)

 

그래서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하는 말씀은 엘리 집안은 저주를 받을 밖에 없었는가? 온갖 축복과 존귀함을 받던 엘리제사장 집안이 몰락하게 되었는가?하는 점입니다.

엘리 집안이 아론의 후손으로서, 존귀한 직분을 받았는데, 존귀함을 잃어버리고 처참하게 저주와 멸망을 받게 원인이 무엇일까?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은혜를 당연시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은혜는 없는데, 은혜와 축복을 당연시했습니다.

삼상2:27-29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에게 출애굽 때부터 특별히 택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게 하였다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혜와 선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 예물을 짓밟을 있느냐?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중히 여겼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엘리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시 여기는 - 비단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의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무나 당연시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 구원에 대한 감사,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 직분을 주심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

- 가족이나 건강, 직장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잃어린 사람들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마음은 굉장히 위험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 엘리 제사장 가문처럼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요, 한번 타락의 길로 들어서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멈추지 않고 타락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집안이 멸망을 받게 번째 이유는 책임은 망각하고 권리만 주장하였기 때문이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예배 때에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어떤 중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존귀한 직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서의 특권도 많이 누렸습니다. 의식주 문제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본문 삼상2:28절에서 하나님께서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여러분, 특권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을 택하여 특권을 주신 것은, 중요한 책임을 맡겨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예배를 인도하고, 율법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도록 하는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을은 귀한 책임은 망강하고, 제사장으로서의 권리만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바쳐지지도 않은 제물을 요구했고,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이 멸망당한 번째 이유를 찾는다면, 말씀을 떠난 미신적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 미신적 생각에 빠져있었는가?

얼마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 다급한 나머지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에 하나님의 법궤만 메고 나가면 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여러분, 미신을 믿는 것과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홉니와 비스하스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궤만 있으면, 전쟁은 그냥 이길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었습니다.

전쟁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날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패하여 군사 3 명을 잃었고, 법궤도 빼앗기고, 홉니와 비스하스도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홉니와 비스하스처럼 미신을 신앙으로 착각하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지 않으면서 성경을 가까이 두는 사람, 십자가는 지지 않으면서 십자가를 걸고, 차고 다니는 사람,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는 사람, 오늘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경외하지 않으면서 그냥 모태신앙이니까, 직분자이니까, 교회에 오래 다녔으니까 모든 일이 될거야, 하나님이 항상 시켜 주실거야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올해에 괜찮았으니까, 내년에도 괜찮을거야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미신적인 신앙으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미신적 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막연히 잘되겠지, 괜찮겠지 믿는 것이 미신적 신앙입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이 멸망받은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영적 분별력의 상실이라고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영적 분별력이 없었느냐, 눈이 어두웠느냐,   임박한 심판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영적인 안일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는 하나님의 법궤도 이방인인들에게 빼앗기고, 전쟁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되고, 홉니와 비스하느는 죽임을 당하고, 엘리제사장도 죽게 되며, 결국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의 이름이라고 지은 이가봇 뜻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날 것을 몰랐습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듯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지면, 얼마 후에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알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면 소나기가 오리라 하면 소나기가 오고, 남풍이 불면 더우리라 하면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알면서 어찌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12:54-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엘리 제사장 가문이 타락하게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사무엘상2:30절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함부로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집과 조상의 집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에 대한 오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항상 용서해주시고, 아무리 버릇없게 굴어도 항상 봐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의외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멸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시지, 노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죄에 대해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시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년 365 마지막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나는 과연 지난 일년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당연시하지는 않았는가?

과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순종하며 살았는가? 하나님을 입술로는 존경한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멸시하지 않았는가?(이사야29:13)”

 

엘리 제사장 가문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의 길로 ,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가 바로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는 엘리 제사장 집안에 비하면, 참으로 비천한 집안 출신의 아이였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머니 한나의 서원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성막에서 살면서 봉사해야 했습니다. 자라면서 부모에게 어머니,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실인으로 바치셨나요?” 하면서 반항할 있었을 텐데, 사무엘은 그렇게 하지 않은 같습니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주님의 성전에서 섬기게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같습니다.

사무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오늘의 본문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삼상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사무엘이 자랐을 때엔 어떻게 되었는지, 삼상 3:19-20절에서 좀더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의 삶의 특징)

(1)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어려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로 여겼던 사람입니다.(삼상12:23)

(2)    하나님 중심 신앙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요구할 , 어떻게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시는데, 다른 왕이 필요하냐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3)    사무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경외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도 자기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혼란스런 사사시대가 지나고 새롭게 왕정시대가 열리도록, 산파역할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2:30 b, “이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말씀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전체 요절이 되는 구절입니다.

사울왕으로부터 다윗, 솔로몬, 이후 이어지는 왕들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의 왕들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서 하나님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은 왕들과,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다가 멸망받게 왕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으로 선택되는 은총을 받았지만, 자만과 불순종에 빠졌다가, 하나님께 버림 받은 대표적인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새의 막내로서, 양떼를 돌보던 소년이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결국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장군에게 말을 기억하십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사무엘선지아와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나요? 같이 성막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태도가 달랐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했으나 홉니와 비스하스는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다윗왕과 사울와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나요? 같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권력자였습니다. 그들의 아임음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2017 동안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여러분 대부분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마음으로 경외하며 살아오신 믿습니다. 그러나 한두 분이라도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오신 있다면, 오늘이 가기 전에, 회개하시고, 해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경외하며 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터 존중히 여김을 받으실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하나님의 은혜 없습니다.

새해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도 많이 사랑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예수님을 닮게 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여러분과 저를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