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탄 주일을 맞아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가정 위에 충만히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 요한복음 1장의 구원 이야기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창세기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실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다”(1:2)라고  창조 이전 상태를 묘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마찬 가지로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던 예수님이, 죄와 사망과 어둠의 권세 아래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빛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라는 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닌 구원의 ,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죄와 사망과 사탄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오실 밖에 없었다라는 것은 만큼 인간 세상의 상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으면 구원받을 없는 절망적인 상태, 어둠의 상태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죄인이고, 죽음과 심판을 앞두고 있는데, 문제는 스스로 구원받을 없고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 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2000 전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어린 아기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어계셨던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요한복음1장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이유,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경우도 있고, 제자들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고 하면서 전해주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10:10)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해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매여 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 하심이니”(2:14-15)

 

(예수님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

첫째, 1:14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을 신학적 용어로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성육신의 번째 목적은   가운데 매여 노릇하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에 인간의 운명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받을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사망과 심판에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을 없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을 있었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를 없게 되자, 하나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3:10-11,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방법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왕으로 무슨 대접을 받으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자 마자 구유에 누우셨던 것이 이것을 예표하고 있다고 있습니다. 짐승처럼 희생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0:45,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 오늘 성탄주일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탄생 속에 이미 십자가가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땅에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짧은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너무나 고통스런 죽임이지만, 예수님은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조롱과 모욕을 받으시고,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거기서 내려와 보라’ ‘네가 구원자라면 너나 구원해 보라 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조롱하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땅에 오신 목적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수치과 고통을 참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죽음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실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4:25절을 보세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세상의 어떤 사람의 자녀와 비교할 없는 영광스러운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있습니다. 하나님께 언제든지 다가갈 있으며,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있습니다. 땅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오늘 본문 1:12-1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영접하는 ) 또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습니다.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없습니다. 모태 신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믿음 생활을 했다는 뜻이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크리스천이라고 자녀가 자동적으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예수님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없습니다. ‘육정 영의 상대적 개념으로써,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내가 원한다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영적으로라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은혜의 상대 개념으로써,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람의 의지로나 선한 행위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겐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너무 쉽지 않은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너무 쉬운 방법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서 사도 요한은 어떻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1:9-11절을 보세요. 심지어 자기 백성까지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분명히 빛으로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도 못했고,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조차도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빛을 좋아할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은 빛으로 인해 자기의 어둠이 밝혀지는 것이 싫어서 빛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살던 사람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기 보다 거절하고 배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또는 그의 이름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졌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실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땅에오신 목적은 인간에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이기 위함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오셨다면, 땅에서 33년동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서 세월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해서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면서 공생애 3년을 포함해서 33년간 사신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본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에 예언되었듯이 태어날 때부터 왕의 신분을 가지셨습니다.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9:6)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군왕들과 달리 없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고,  나중엔 스가랴서에 예언된 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온유하시고 겸손하셔서 군마나 마차가 아닌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던 것입니다.(21:5)

십자가를 지실 때도, 온갖 모욕, 조롱, 채찍당하심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지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전혀 온유하지 못하고 전혀 겸손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쉽게 분노하고, 미움과 교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낮아지신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덧입으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말씀이 성경에 많지 않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마디로, 나사렛에서 부모님께 순종하였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2:51,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으시더라. 어머니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빌립보서에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길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이 되시고, 그것도 종의 형체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2:5-8)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실 , 말로만 명령하는 방식이 아닌 삶으로 본을 보이는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겼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하실 때에는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신 후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우리 교회에서 누가 제일 섬길까? 목자 목녀님들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분들이 많지만, 정승진집사님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시간만 나면, 누가 부탁만하면 연장을 들고 교회 건물 이곳 저곳을 고칩니다. 고치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얼마 전에 날씨도 추운데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을 교체하고, 울타리를 보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 아직 밝기도 전에 벌써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 주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주기도문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는 순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고, 제자들이 기도하는 예수님을 보고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옮겨 주세요. 그러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는 결국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나라 밖으로 멀리 가시지는 않았지만, 유대의 여러 도시와 촌에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1:38)

 

예수님은 죽음의 본도 보이셨습니다.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엄마 품에서 아기가 잠을 들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 영혼을 부탁하였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16-17,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것이라

은혜 위의 은혜 구약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비교할 , 비교할 없는 복음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과 비교할 없는 최고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자까지 받을 있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고자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섯 째로,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18절을 보세요. “본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구절은 신학적 진술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절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사람이 없고, 수도 없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주세요라고 했을 ,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죠?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2:5, 1:1) 예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섯 째로,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정체성과 어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에도 하나님의 비젼을 품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있는가? 열두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경 선생들과 대화한 사건에서 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을 , 마리아가 예수에게 말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님의 대답 :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정체성과 땅에서 감당해야 사명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가지로 요약할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는 등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명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예수님은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시고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실 ,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17:4)라고 했고, 십자가 상에서도 내가 이루었다”(19:30)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부족한 점이 크리스찬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영역에서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하나가 인생의 뚜렷한 목적과 비전 없이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꿈과 목표를 정하고 살아가는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신분이 달라졌으니, 가치관도 달라지고, 삶의 방식도 달라지고, 비전과 꿈도 달라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향기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한경직 목사님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를 적이 있습니다. 한목사님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목사로서의 삶을 비추어볼 , 부끄럽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어떤 노목사님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제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어느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너는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이 설교했느냐라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충 계산해보니 일만 이상 설교를 했다라는 것입니다. 많이 설교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번째 질문은 – “너는 설교한 대로 살고 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부끄러워서 대답하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경직목사님은 설교도 하셨지만, 거의 설교한 대로 평생을 사셨다라는 것입니다.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템풀턴 상을 받으셨는데, 푼도 갖지 않으시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달라는 뜻으로 영락 교회에 받쳤다고 합니다.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저는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신사 참배를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사참배한 것이 아니라 단체로 함께 참여한 같습니다.

2000 4 19일에 소천하셨는데, 목사가 남긴 재산은 , 칸도 없었습니다.

 

목사로서, 설교하는 - 쉽지 않지만, 설교를 준비해서 하는 것보다, 설교한 대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 들은 말씀대로 사는 ,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탄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나신 사건을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모른채, 쇼핑하는 , 노는 날로 알고 있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의 정신으로 것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베푸시고, 기도하시며, 복음 전하며 사실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마무리하시고 새해엔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더욱 헌신하실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