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성경의 다섯 권을 모세 오경(토라, Pentateuch)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입니다.

창세기- 천지창조 이야기부터, 명의 족장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이야기입니다.

지난 1년간 살펴본, 출애굽기- 모세의 출생 이야기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시내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성막에서 봉사하던 레위지파에서 제목이 유래되었으며, 제사에 관한 복잡한 규정들이 나와 있고(우리가 읽기에 가장 지루한 ), 민수기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는 이야기, 인구조사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하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는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한 말씀입니다. 모세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지난 중에도 말씀드렸지만, 출애굽기의 핵심 사상은 크게 가지입니다.

(1)    앞부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자유로운 백성이 출애굽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건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2)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 관계가 맺어진 , 이것은 마치 결혼식을 올린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3)    성막에 관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이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출애굽기 전체 40 중에서 성막에 관련된 장이 무려 12장이나 됩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성막에 관한 말씀이 주어지는데, 오늘 본문 40장에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성막을 간단간단하게 그림으로 보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화면으로 성막을 보여준다.) 성막은 솔로몬 성전이 지어지기까지 이동식 성전 역할을 했습니다.

(1)    -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게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밖에서 성막 뜰로 들어가는 문이요, 다른 하나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문은 출입구입니다. 사람이 들어가고 나가는 곳인데, 성막 문은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자가  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10:9-10,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세상에 많은 위인이 있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없으셨던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우리의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2)    번제단 제물이 완전히 불로 태워져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완전한 제물로서 죽임 당하고, 희생되신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 마디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피로 우리가 대속함을 받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벧전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같이 없어질 것으로 것이 아니요 오직 없고 없는 어린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것이니라

어떤 이는 예수님의 희생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아야 것은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던 분인데, 우리 때문에 십작자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3)    물두멍 놋으로 만들었으며,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의 기능은 오늘 본문 40:30-3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으니라 모세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되니라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은 것은 성도의 회개를 의미한다고 있습니다. 목욕한 사람도 손과 발이 더러워질 밖에 없어서 날마다 씻어야 하듯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 위해서는 거울에 얼굴을 비추듯이 자주 말씀에 비추어 하는 회개를 통해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일1:8-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제사장들이 성막에 드나들 때에 손과 발을 씻었듯이 우리는 회개를 통해 깨끗해져야 하겠습니다.

(4)    떡상(진설병)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지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에 위치한 것이 떡상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를 쌓아 놓았습니다.

떡은 또한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육의 양식인 빵이 먹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듯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의 양식을 먹음으로서, 육신의 생명이 유지되듯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음으로써, 영적인 생명과 건강이 유지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등대(등잔대, 촛대) – 등잔대는 성소에서 떡상 맞은 ,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37:17절에 등잔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순금으로 만들어 졌으며, 등잔 일곱 개가 서로 연결되 있으며, 항상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힐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빛을 비추는 등잔대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8:12,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9,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6)    분향단 분향단은 성소의 앞부분, 지성소로 들어가는 앞에 놓여 있는 기구입니다. 오늘 본문 40:26-27절에서 금향단의 용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향단을 회막 휘장 앞에 두고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요한계시록에서는 향단에서 올라오는 향와 연기는 성도의 기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아름다운 향연이 되어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8:3-4)

8:3-4,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성도의 기도가 하나도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예물이 됩니다.

(7)    휘장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10:20, 27:51)

(8)    법궤(언약궤, 증거궤)지성소 안에 두었던 것으로 법궤 속에는 두돌판이 있었습니다. 법궤 또는 언약궤 위에서는 속죄소가 덮여 있었습니다.

본문 40:20-21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증거판을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위에 두고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려 증거궤를 가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법궤- 증거궤, 언약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으시고,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실 , 성막의 지성소, 언약궤가 있는 곳에 항상 임재해 계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 거룩한 분이시기에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갈 없었습니다. 다만 대제사장만 일년에 1 속죄일에 들어갈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가르쳐 주셨을까요?

성막은 전부 우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 성막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오직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의 뜻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예수님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14:6)

베드로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담당했던 로마 백부장도 고백하였습니다. “ 사람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

 

또한 성막(회막)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들과 함께 거하실 있는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하셨다라는 표현이 바로 장막을 치고 함께 살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과 함께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성막 또는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때가 되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신 것은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는 것에 비유해 있습니다.

결혼 이전에 따로 따로 살다가 이제 살림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함께 집에 머뭅니다. 같이 사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시고, 성막을 통해 함께 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그런데 특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누리게 것입니다.

 

성막을 세웠을 , 하나님의 영광이 하도 충만하게 임하여서, 모세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40:34-35절을 보세요.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말씀에 의하면, 성막이 처음 세워졌을 , 가시적으로 구름이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채웠던 같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모세가 안으로 들어갈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것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언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시고,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만 되길 원치 않으시고, 날마다 함께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남편이 되고, 친구가 되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예수님이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땅에 인간으로 오신 -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교제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죄에서 구원받을 아니라 날마다 주님과 친구처럼 교제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 시대에 가장 본을 보인 사람이 모세요, 신약 시대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교제의 중요성을 설명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없음이라”(15:5)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신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도와 함께 거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 예배와 찬양 등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좋은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마지막으로 깊이 묵상해 보아야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철저히 성막을 통한 인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40:36-38절을 보세요.

구름이 성막을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광야의 행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막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멈추어 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1)    이스라엘은 가야할 때와 머물러야 때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기간도 스스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구름이 성막 위에 1년동안 머물면 1 동안 떠지 않았습니다.

(2)    방향도 스스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3:5-6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지혜로우십니다. 누가 멀리 보고 미래를 아십니까?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한 점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바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떠났다는 것입니다. (12”1)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의 순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22장에 보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 어려운 손종을 하였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받고자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신이 아니셨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아브라함이 순종하기 어려운 순종을 하였다는 것이요, 독자까지 내어드리려 했던 아브람의 마음을 통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느끼대 하는 것입니다.

22:12,사자가 이르되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노라

 

아브라함의 순종과 아들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상징한다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의 순종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여러분,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낮아져서 결국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순종이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지만, 아브라함의 순종이나 예수님의 순종에 비하면 순종도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 있는용서하라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성막에 임재한 구름이 멈추면 멈추고, 움직이면 움직였으며, 구름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광야의 길을 가는 같고,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내자 없이 미지의 땅을 가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완전한 안내자가 계십니다. 목자되신 주님이 계시며, 보혜사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주님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길지 않은 인생 속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래가 가슴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물론 미래에 어떤 고난도 없을 것이란 뜻이 아닙니다.

 

2017년도 이제 보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는지요? 하나님의 인도에 온전히 순종해 왔는지요?

아쉬움이 남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해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철처히 순종함으로 따르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주간 기도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연말 특별 새벽 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셔서, 새해에는 더욱 주님과 동행하고, 더욱 주님께 순종을 잘하는 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새벽기도 훈련어떤 분들에게 결코 쉽지 않을 , 그러나 시도해 가치가 있습니다. ‘새벽에 하는 주님과의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즐거움으로 참여하실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