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예배 순서 중에 어떤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찬양? 기도? 말씀? 헌금? 모든 순서 중에 중요하지 않은 순서는 없습니다.

 

출애굽기(엑스도스) 제목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중간 부분에 있는 시내산 언약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언약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언약을 맺지만, 국가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은 시내산에서 이뤄졌습니다.

19:4-6,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보물)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우선 4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조가 나옵니다.

언약의 조건으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십계명) 언약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특권으로써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보물)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에 강조된 내용은 이동식 성전인 성막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막에 관한 말씀은 크게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32 금송아지 사건을 중심으로 앞에 놓여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놓여 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전에 기록된 성막에 관한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막의 모형, 구조와 크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내용을 받아 기록한 것들입니다. 성막에 관한 설계도를 설명한 것이라고 있습니다.

반면에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기록된 성막에 관한 말씀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40장에 성막의 완성과 봉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성전) 세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을까요? 가나안 땅에 당도해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광야 생활할 성막을 만들어 세우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성막을 만들 ,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양식대로 만들게 하셨을까요?

 

성막(성전) 중요할까요? 성막(성전) 하나님을 예배하는 , 하나님을 만나는 , 기도하는 집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만나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집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집인 것입니다. 거룩한 집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예배였습니다. “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할 것이라라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구약 시대는 성전에서의 예배 통해 하나님께 나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 대속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이제 구약의 성전의 기능이 예수님에게서 완성되게 되었습니다. 이상 제사장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2:19-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이 진정한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성전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의 몸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고전3:16-17,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출애굽기에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 예배 장소로서의 성전에 관한 말씀이지만, 실상은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휠씬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워야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몸이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분으로 나눌 있는데, 부분에서는 성막을 위한 물질을 드리는 헌금에 관한 말씀이고, 윗부분은 재능을 드리는 헌신에 관한 말씀입니다.

  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짓기 위해 성막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자원하여 바쳤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성막을 위한 헌금을 기꺼이 드렸습니다. 성막을 위한 헌물을 드릴 ,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같은 물품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바칠 있는 물건을 바쳤습니다.

-          22, 마음에 원하는 남녀 팔찌, 귀고리, 가락지, 목걸이와 여러 가지 물품을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청색 자색 홍색 , 가는 ,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 해달의 가죽, 은과 , 조각목

-          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 손수 실을 빼서 가져오고,

-          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 염소털로 만든 실을 가져오고,

-          27, 모든 족장 호마노 에봇과 흉배에 물릴 보석, 등불, 관유,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

-          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 누구나 모세에게 명한대로 성막을 만들기 위해 물품을 드렸습니다.

-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만 헌물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남녀 노소, 누구나 자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크든 작든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35:21절에 의하면,”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속에서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성전 건축 헌금을 따로 하지 않지만, 십일조와 감사헌금, 선교 헌금 일반적인 헌금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헌금 만큼 설교 시간에 다루기 어려운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민감한 주제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헌금 문제 때문에 오해도 생기고 시험에 드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헌금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헌금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동이라는 것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주면서도 기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헌금은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닌 같습니다.

본문에서 헌물을 바친 사람들은 또한 자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자원한다 것은 억지로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동을 받으면 자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원하는 사람의 특징은 힘들어도 힘든 모릅니다. 마음이 기쁩니다.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성경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후9:6-7절에서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의 중요한 원칙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인데, 자원하여 드린다고 해서 헌금이 적게 걷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36장을 보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져와서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 36:5, “모세가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자원하여 드릴 더욱 풍성하게 거둘 있는 것입니다.

역대상29장에서 다윗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 아니라 방백들, 모든 백성들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헌물을 드렸습니다. 점에 대해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OMF선교회(중국 내지 선교회) 원칙- 허드슨 테일러의 믿음에 따라 모든 재정을 오직 하나님께 의존하는 방식으로 선교활동을 하기로 원칙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일체 모금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교회보다도 많은 선교사를 보냈고, 후원하는 선교단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자들이 드리는 헌금은 항상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헌금 단지 물질을 드리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고 또한 헌신도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과 인생 자체도 하나님에게서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또한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나아가서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에(6:21 )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헌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감동하사 헌물을 드리게 하셨을 아니라 사람들을 택하셔서 지혜를 주시고, 직접 성막을 만드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성막 기술자로 세우셨을까요?

특별히 하나님은 사람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사람은 유다 지파의 훌의 손자의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이고, 다른 사람은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인 오흘리압이었습니다.

브살렐은 금속이나 , 나무를 다루는 특별한 재능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 들어갈 모든 기구들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흘리압은 특히 기술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34절을 보세요. “ 그와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흘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그런데 정교한 성막을 만드는 것은 결코 두사람이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브살렐과 오흘리압 외에도 많은 일꾼들이 필요했는데, 호흘리압은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서 했던 것입니다.

 

성막을 짓기 위해 부름 받은 브살렐과 오흘리압 스스로 성막의 일꾼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고, 재능을 주셔서 일꾼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주의 일꾼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소명 의식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불러주셨음을 확신할 때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할 있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이든, 장로, 권사, 안수집사와 같은 직분자이든, 목자와 목녀, 교사, 성가대원이든 모든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불러 세워주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원해서 되었다 생각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누가 부탁해서 일을 맡았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 자원해서 일을 맡았든, 누가 시켜서 일을 맡았든, 하나님께서 불러 지명하여 일을 맡겨 주신 믿습니다. 소명 의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없는 것입니다. 소명 의식이 없으면 쉽게 교만해 있고, 또한 쉽게 낙심할 있고, 쉽게 포기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자에게 무슨 자세가 필요할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있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겸손과 인내심입니다. 일꾼을 불러서 일을 맡겨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역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의 자세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17: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일을 것뿐이라 할지니라

종은 섬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교만이나 불평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했던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섬길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2: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성도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여러분, 브살렐과 오흘리압과 성막 일꾼들이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일에 부름받아 쓰임 받게 것에 대해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했을까요?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사실에 대해 감사하며 기쁨으로 감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장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힘들고, 외롭고, 오해도 받고, 마음의 상처도 받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같은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주의 일꾼으로 사용하심 대해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직을 감당할 있었을까요? 머리가 명석하고, 누구보다도 재능이 많아서였을까요? 성격이 좋아서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고생을 하면서도 인내로 헌신할 있었습니다. 그는 땅의 상급보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딤전1:12-14절을 보세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의 마음 속에는 자격 없는 자를 불러 구원을 베풀어주셨을 아니라 불러서 사도의 직분까지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던 것입니다.

) 국가 대표- 국가 대표가 되어 국가를 위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대표 선수가 되는 것을 기뻐하고, 부름받았을 기꺼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받는다는 - 말로 다할 없는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브살렐과 오흘리압-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짓는 일에 부름받은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자세는 충성심, 신실성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구절인 고린도전서4:1-2절을 보세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에 사용된 충성- 영어로, Faithfulness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신실성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번역하면 책임감’, ‘약속을 지키는 이라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봉사, 헌신은 자발적입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실성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해낼 없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칭찬받은 종들이 어떤 칭찬을 받았나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자세는 협력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혼자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막을 세우는 일에 필요한 물품들도 사람이 조달할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남녀 노소, 부자,가난한 모든 성도들의 다양한 헌물을 통해서 성막이 완성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어 세우는 - 모세가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전할 있었지만 집을 짓는 기술을 없었습니다. 성막 기술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브살렐과 오흘리압 둘이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돕는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꾼들에게 기술을 가르친 것입니다. 여러 일꾼들이 마음이 되어서 협력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 우선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점은 일을 혼자하려는 생각입니다. 협력하지 않고, 혼자 하려는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몸의 지체들의 협력에 비유해 있습니다. 또는 건물에서 서로 연결되는 비유해 있습니다.

다른 지체의 도움이 없이 몸이 세워질 있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 4-8에서 몸의 여러 지체들이 서로 협력할 , 몸이 기능을 하듯이 하나님의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서로 마음으로 협력할 , 건강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 추운데, 추으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지체가 협력합니다.

건물-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지만, 교회는 건물과 같다고도 있습니다. 모든 건물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립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교회가 하나로 연결되어 성장해 간다고 하였습니다.

2:20-22절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런데 주의 일이라고 , 교회에서 하는 일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면 교회에서 말씀 사역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살렐과 오흘리압처럼 손으로 하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터스키기 대학 박물관에 가면 땅콩 박사로 알려진 죠지 워싱턴 카버(1864-1943) 관한 역사적인 자료들이 많습니다. 학교 교정에 그의 무덤도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가보시면 좋습니다.

카버는 농과대 교수였습니다. 특히 땅콩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였는데,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 못지 않게 열심히 기도하며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란 연구실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연구했습니다.

당시 알라바마 지역의 대규모의 목화 농장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면화를 심자, 땅이 힘을 잃고 이상 좋은 소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카버는 기도하면서 계속되는 목화 농사로 망가진 땅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땅콩을 심으면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땅콩을 많이 생산하면서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꺼번에 수도 없었고, 땅콩을 오래 보관할 없었던 것입니다. 농민들은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카버는 이제  기도하면서 땅콩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지혜로 120 가지 땅콩 제품을 발견하게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카버는 하나도 상품권이나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받지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모든 수익이 가난한 흑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이길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금은동과 같은 금속을 다루고, 돌이나 목재를 다루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과 지혜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땅콩에 대한 연구도 하나님의 지혜로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하는데 있어서, 모세와 아론과 같은 영적 리더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적으로 봉사하는 분들도 필요하고, 브살렐과 오흘리압처럼 손의 기술, 재능을 드림으로써 봉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할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브살렐과 오흘리압에 성막을 만들 , 자기들이 원하는 모양과 크기,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36:1)

12:1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의 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하면서 헌신에 대해 말씀하고 나서,  12:2절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일을 , 위험성 중에 하나는 세상의 방법, 세상의 철학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경험이나 방법대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령, 헌금을 사용함에 있어서, 세상의 재정 원칙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가능한한 돈을 적게 써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효율성이란 가치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원칙은 전혀 열매가 없는 것과 같은 곳에 써야 때도 있고, 세상적으로는 중요해 보이지만 전혀 돈을 쓰지 말아야 때도 있습니다.(김서택,위대한 신앙 3, p.325)

교회에서의 봉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성도가 따라야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 분쟁의 씨앗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를 평강을 누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일꾼들 마음으로 하나되고 서로 협력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몸의 지체들입니다.

-          물질을 드리든, 재능을 드리든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또한 충성심, 인내심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으로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모세뿐 아니라 브살렐과 오흘리압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사명을 감당할 있었습니다.

35: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우리가 오늘날 지어야 성전은 모세 시대에 지은 성막보다 짓기 어려운 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 이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는 일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 것보다 사람낚는 어부로 전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을 세우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을 드리는 , 시간과 재능을 드리는 -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특권이고 영광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브살렐이나 오흘리압, 땅콩 박사였던 죠지 카버처럼 시대에 여러분의 재능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재능이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드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