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결혼식에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수많은 만남들이 있지만, 만남들 중에도 특별히 소중하고 복된 만남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만남이 가장 소중한 만남일 것입니다. 또한 친구, 선생님, 영적 지도자와의 만남도 귀중한 만남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간과의 만남보다 훨씬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있다면, 가장 소중한 분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어떤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도 우리를 변화시키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머문 1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다시 떠나라를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 시내산에서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십계명을 주시면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내산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지 끔찍할 정도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굉장히 실망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언짢게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사이에, 아래에서 사람들이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난리법석을 피운 것입니다. 이것은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부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눈물로 중보기도를 올렸습니다.

(모세의 기도)

모세는 있는 모든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숨을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세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부를 없애시면,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시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끌어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능력이 없어서 중간에 죽인 것이 아니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여, 주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스스로 맹세까지 하시면서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고,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약속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길, ‘ 백성이 자기를 위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으니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주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뜻을 돌이키셨지만, 구원의 은혜를 그렇게 쉽게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거두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33:1-3절을 보세요.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겠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자손에게 주기로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말씀에, 하나님의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자신보다 선물이나 축복만 바랐기 때문에 천사를 앞서 보내고 그들의 원대로 선물인 가나안 땅을 주겠지만하나님께서 직접 그들과 함께 하시지는 않겠다는 무서운 말씀인 것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된 신앙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금송아지 우상으로 바꿔놓고, 앞에서 제물을 바치고 춤을 추면서 뛰놀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길 좋아하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이냐 아니냐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며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잘못된 것을 구하면 주시지 않으실 아니라 책망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변하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상은 신이 아니기에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욕적인 것을 구해도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우상을 통해 얻을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담스럽고 우상은 만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우상 취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하셨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너희들에게 약속한 땅을 주긴하겠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고 우상취급하는데,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축복이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떤 축복도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실망했을 어떻게 말합니까? 만약에 자녀가 부모가 원치않는 결혼을 하려고 , 자식을 이길 없는 부모는 다음과 같이 말할 있습니다. “그래 네가 원하는대로 해라. 결혼식 비용도 도와주겠다. 필요하면 집을 얻을 있도록 전세금도 대줄 있다. 그러나 결혼식에는 가지 않겠다. 결혼 후에는 이제 부모라고 찾아올 필요도 없다. 너희들끼리나 살아라.” 이렇게 말했다면 축복이인가요 저주인가요?”

저주는 아니라고 해도, 결코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축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함께 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선물보다 선물을 주시는 분과의 관계가 축복입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의 축복은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입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다른 모든 축복들을 그냥 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요셉-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보디발의 집에서도 형통했고, 심지어 감옥에서도 형통했습니다.

다윗-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사울 왕을 피하여 온갖 고초를 겪지만, 결국엔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에 이어 왕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표현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습니다.

사울 - 하나님의 신이 떠나자 악신이 들어와서 미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삼상16:14)

엘리 제사장 자식이 잘못할 , 제대로 훈계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제사장의 직분은 유지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자, 아무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들(홉니와 비느하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도 아무 소요이 없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어떻게 되었나요? 법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아들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비보를 들은 엘리 제사장도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었으며, 비느하스의 아내는 또한 이소식을 듣고, 마침 만삭이었는데, 해산의 진통이 시작되어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기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의 목적- 무슨 선물이나 축복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다른 복들은 복의 부스러기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은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와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구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없어도 상관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우리가 함께 생각해 , 하박국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을 다른 무엇과 바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음성가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맘과 정성 다해,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감사하게도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늦게나마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33:4-6절을 보세요.

백성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사람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의 의미로써, ‘몸을 단장하지 않았습니다. 몸에서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몸을 단장하지 않는 , 몸에서 액세사리를 떼어내는 것이 회개의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ㅡ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원래 몸에 액세서리를 달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중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무슨 장신구가 필요했겠습니까? 그런데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은금패물과 여러 장신구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유로운 몸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이집트인들처럼 몸에 액세서리를 달고 살았던 것입니다.

(장신구를 다는 -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님)

장신구- 이집트인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절정이 이집트인들이 섬기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탈출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그런 우상숭배에 빠진 이집트인들과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몸에 장신구를 달면서 이집트인들과 비슷해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제ㅡ몸은 출애굽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심으로 회개한다는 의미로써, 몸에서 장신구들을 떼어 내었던 것입니다.

 

(회개란 무엇인가?)

마음을 돌이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12:2,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몸은 이집트에서 나와 자유롭게 되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로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마음까지도 이집트에서 해방된다는 의미로써, 몸의 액세사리를 떠어내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도전) 오늘의 우리들-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세상의 가치관, 습관들을 달고 살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오늘 떼어낼 것은 떼어내냐 합니다. 욕심과 탐욕의 악세사라, 미움과 시기의 액세서리, 거짓의 액세서리, 원망하는 액세서리 있으면 오늘 떼어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죄악을 품고, 죄의 습관의 노예가 되어 사는 , 거룩하신 성령께서 함께 하실 없습니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없는 것입니다. 아직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이 있다면 반드시 순종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3:7-11절은 모세가 정기적으로 회막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이야기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33:7절을 보세요.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회막(the tent of meeting)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었던 예배 장소인 이동식 성전이었던 성막과 동일시하는 학자도 있고, 성막과 다른 장막이었다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문맥으로 보면, 아직 성막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성막과 구별하여 순수하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던 (장막)이라고 있습니다.

모세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이지만, 마치 신약 시대의 성도와 같은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것입니다.

모세는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대화하는데 자유롭지 못한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사모하여 7절에 의하면 항상’- 기회만 되면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으로 나가서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영적 리더십의 비밀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되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함께 거할 없는 관계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을 허문 영원한 속죄제사로 해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달리,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서 짐승이 아닌 자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바쳤으며, 한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가 나갈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 성전의 휘장이 둘로 찢어진 사건이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이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도 없다, 막힌 담은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릴 있게 되었습니다.(8)

 

그런데 여러분, 구약 시대에 살던 모세는 제한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만남, 대화를 사모하여 항상 회막에 나가 하나님과 교제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오늘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있는 특권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독대,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의 시간을 회복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교제를 본을 보이신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바쁘고 바쁜 중에도 새벽마다 한적한 곳에 가셔서 하나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에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구절에서 예수님의 기도의 시간과 장소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하루의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사용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쁜 스케쥴이 이어지는 하루를 시작하기 시간, 만나게 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있기 , 만남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라는 것입니다.

한적한 가셔서 기도했다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진솔한 기도를 하기 위한 장소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골방 기도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골방이 되었든, 한적한 곳이 되었든, 성전이든, 모세처럼 회막 안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과 대화의 시간을 매일 갖으며 사는 것입니다. 진솔한 기도의 시간을 매일 갖는 , 이것이 신앙 생활의 기본이며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주 하나님과 만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만 바라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추구하는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1)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 하나님을 아는 것도 수준이 있습니다. 단지 이름 정도만 아는 것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3)    영적인 힘을 다시 충전받기 위해. 전기 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전기차라고 충전으로 영원한 전기 자동차는 없을 것입니다.

(4)    자신의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인가?

(1)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2)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4)    찬송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찬송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시는 분이시다.(22:3)

찬송-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22:1-3절을 보세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오며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과의 만남, 오직 하나님과의 대화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날마다 스케쥴을 ,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우선시 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소중함- 경험적으로 있는 일입니다. 맛보아야 맛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34:8) 음식을 맛보지 않고는 맛을 없듯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의 맛을 경험하지 않고는 없는 것입니다.하나님과의 사귐의 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축복을 잃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예화) 다니엘- 9

구약에서 모세처럼 하나님과의 사귐의 맛을 알고, 기도를 생명처럼 여긴 사람을 찾으라면 저는 다니엘 들고 싶습니다.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선지자도 아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자의 후손으로서,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고위 관리가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도덕이나 인품에서도 흠이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이 정승 중에 하나로 높이고, 중에서도 가장 신임할 , 주변에서 그에 대한 시기 질투가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의 적수들은 다이엘의 흠을 찾아보려고 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신앙의 문제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하나의 금령을 만들었는데, ,”30 동안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 던지는 금령이었습니다.

6:9,다니엘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루에 번씩 기도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긴 것입니다. 금령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각오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먼저 드렸습니다.

그랬을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했습니다. 목숨과 바꿀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다니엘을 붙잡혀 사자 굴에 던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아서, 다니엘을 물지 않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모함했던 사람들은 사자 굴에 던져지니, 그들의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굶주린 사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대화보다 중요한 만남은 없습니다. 모세는 항상 회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 친구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번씩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른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으며, 제자들에게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다웟은 새벽을 깨우리라고 외쳤습니다.

세상에서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과의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잃어버린 분이 있다면 다시 찾으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일년 12 달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있는 가장 좋은 달인줄 믿습니다.

오늘 성만찬을 통해서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을 깊이 체험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