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고사 성어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중에 하나가 전화위복입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 뜻입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히 안좋은 일이고, 재앙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수능일에 포항에서 5.5 강도의 지진이 일어난 일이 수험생들에게 화가 같지만, 복이 있습니다. 한동대의 피해가 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한동대에 복이 수도 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 가운데, 전화위복이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었으면, 오늘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 가지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 ,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석이 중요합니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으며, 되돌릴 없습니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해석을 잘못하면 결코 복이 되지 않습니다.

감사가 인생의 해석학이다어떤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너무 좋아서 제목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있습니다.

- 아브라함 시대의 유명한 부자요 의인이었습니다. (-7000, 낙타-3000, -500겨리, 암나귀-500마리, 종도 많았다) 그가 얼마나 철저한 사람이었는가? 아들들의  생일 잔치가 끝나면 다음 아침에 그들을 성결하게 하려고 각각 번제로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아들들이 잔치 중에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습니다.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한 욥에게 불행한 일이 연거푸 몰려왔습니다. 많던 재산을 삽시간에 잃어버렸을 아니라 아들 일곱과 셋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슬픔을 당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욥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슬퍼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슬퍼했습니다. 너무 가슴이 찢어지는 같아서,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러나 절망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의 주권이란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보면,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받아들일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일어난 일로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으로 해석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욥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사건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욥이 중년에 불행한 일을 만났다면 요셉은 청소년기에 위기를 만났습니다.

17 , 하나님이 주신 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게 됩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게 것입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자리잡고 살게 것과,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로서 살게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집에서도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으며,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였다고 하여,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정도면,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삶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도대체 제게 그러십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으로 버텼습니다. 결국에는 때가되어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의 바로에 버금하는 위치로 올려 주셨습니다.

나중에 형님들이 가나안의 기근으로 인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왔다가 만났을 ,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워하고 있을 어떻게 말했나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에 용서해 있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하나님이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애굽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7-8)

만약에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해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형들에게 보복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팔아먹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자기를 먼저 이집트에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박국서 다른 예언서들과 달리, 하나님께 대한 신학적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예언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서는 선지가가 먼저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으로써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박국이 어느 시대의 어떤 선지지였는가? 성경에서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1절에서 선지자 하박국이라고만 나오고, 6절에서 갈대아 사람 침공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전 6세기 남유다가 바발론에 의해 멸망받기 시대의 선지자가 아니었겠느냐 추측할 있을 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훌륭한 점은 아무 생각 없이 살지 않고, 영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 신학적인 질문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민족의 문제와 아픔을 껴안고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직 개인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영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지 모릅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관심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겨우가 많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성공, 출세, 세상적인 복을 받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적인 문제, 신학적인 문제들에게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하박국의 질문 이스라엘 사회의 부정부패에 관한 질문입니다. 아모스나 미가 선지자도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했습니다만, 하박국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정의를 굽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1:2-3절을 다시 보세요.

하박국은 이스라엘 사회의 부정의와 강포로 부르짖고 외쳐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냐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죄악이 만연하고, 패역이 팽배한 것을 보게 하십니까?

결론적으로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애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나님의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하나님은 침묵만하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법, 불의에 대해 심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방법은 굉장히 무섭고 사나운 이방 민족을 일으켜서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6-8절입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대답에 하박국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불의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만, 그런데 이스라엘보다 악한 갈대아 사람(바벨론) 통해서 하십니까? (하박국의 둘째 질문)

그들은 유다백성들보다 훨씬 악하고 악날한 민족인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나요? 라고 다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유명한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방 민족들을 몽둥이로 잠시 사용하시지만, 이후엔 그들에 대해서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잠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여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악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악인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악인 때문에 시험에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의인은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은 하박국의 기도 또는 찬양입니다. 중에서도 3:16-19절을 결론 부분인데, 하바국의 절대적인 신앙을 보게 됩니다.

 

16 : 민족의 현실, 전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창자가 흔들렸고 목소리로 말미암아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뼈에 들어왔으며 몸은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문제- 신앙이 너무나 개인주의화 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에 대해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문제로 가슴 아파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을 달랐습니다. 3.1운동 당시에 독립 선언문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중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민족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박국은 어떤 사람인가?

하박국은 민족의 문제로 가슴 아파하고, 고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나라와 민족,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느혜미야- 고국의 소식을 들었을 , 가만히 앉아 있을 없었습니다. 민족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수일 동안 울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다음에 행동했습니다.

왕궁에서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멀리 예루살렘까지 가서 성벽 재건을 마쳤습니다.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52일만에 성벽 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운 - 무너진 신뢰, 무너진 윤리,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을 보세요.

하만의 음모로 민족이 위기를 맞게 되었을 ,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했습니다.

모르드개 :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시대에 유다인들이 멸절될 위기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의 신앙, 느헤미야의 신앙, 모르드게와 에스더의 신앙의 공통점- 개인적 차원을 넘어 나라와 민족의 문제로 고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 분만으로 기뻐하고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하겠다 라는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가? 하박국처럼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 분으로 인해 만족하고 기뻐할 있는가?

만약에 직장을 잃고, 사업이 부도가 나고, 자녀들은 대학에 떨어지고, 비자가 거부당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분만으로 기뻐할 있는가?

우리의 감사는 너무나 조건적이지 않은가? 무엇이 있을 감사하고, 없으면 불평하지 않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 은혜와 축복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무엇이 있을 , 무엇 때문에만 감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처럼 아무 것도 없어도 감사하고 하나님 분만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와 우리에 양이 없어도 감사할 있고 기뻐할 있는가?

(1)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에 기뻐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자입니다.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 계시면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뻐할 있는가? 고난 속에서 감사할 있는가?

고난의 유익을 보기 때문입니다. 시편119:71편에서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는가?

a)       우선,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죄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속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사람이 회개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이 와야 깨닫고 회개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b)      고난의 다른 유익은 지혜를 얻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배울 없는 삶의 지혜를 고난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 자녀를 사랑한다고 어떤 고생도 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20 이상 학원을 운영한 사람의 이야기)

대학 입시 성적-거의 중학교 2학년 때의 성적이 그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성적이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공통점은 2 3 사이에 가정에 변화가 있었던 경우라는 것입다. 그런데 변화도 어떤 좋은 변화가 아니라 불행한 변화라는 것입니다. 부모 하나가 죽거나 실직했거나 사업이 망하는 경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월등하게 향상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예기해 주나요? 사람은 고난을 통해 뭔가 중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c)       하나 고난당한 사람이 얻는 유익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있는 사람,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해 있는 리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위로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실 아니라,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d)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에 근거합니다. 땅에서의 성공이나 출세 차원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을 ,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있는 것입니다.

신앙 때문에, 예수 이름 때문에 고난 받고 피박을 받을 오히려 기뻐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음을 믿을 , 어떤 상황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실패가 끝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하박국의 신앙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슨 문제로 고민하고, 무슨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감사하는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너무 개인적이고 기복적이지 않은가?

하박국과 같은 태도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나라와 민족, 교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껴안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분으로 인해 무조건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같이 다시 하박국3:17-18절을 읽어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