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성탄절과 함께 제일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이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자원이 풍부한 , 정치적으로 발전하고 안정이 . 여러 요인 하나는 청교도들의 신앙 전통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620 100여명 되는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하여 겨울을 나고, 이듬해 농사를 지어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것입니다. 겨울의 추위와 풍토병으로 인해 추수감사절에는 50여명 남짓 살아 남았습니다. 감사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원망과 후회로 1주년을 맞이할 있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청교도들을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모든 일에 감사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이 감사주일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것운 성격이나 체질의 문제 아닙니다. 선택 사항도 아닙니다. “저는 성격상 감사가 안나옵니다. 긍적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눈에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데살로니가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1: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바울은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요,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당연히 감사를 표현해야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았을 , 우리 주예수님은 많이 섭섭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나병환자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중에 아홉은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고, 가버렸을 때에, 돌아와 감사를 표현한 사람을 칭찬하시면서 사람이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하시며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무슨 공치사를 하시거나, 사례를 받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인생과 신앙에서 감사를 빠뜨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17)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신 권면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에 해당합니다. 바울이 복음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살게 때에,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써서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는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첫째 권면 :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강조하기 위해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환경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가령, 학생들- 시험을 치고, 합격을 하면 기뻐하고, 시험을 못쳐서 떨어지면 슬퍼합니다. 운동선수- 경기에서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몹시 애석해 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상황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하고 감사할 있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고 섭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영원히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항상 기뻐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살아도 감사합니다. -주를 위해 있으니까요, 죽어도 감사- 주를 위해 죽을 있을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14: 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래서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항상 기뻐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 환경과 상관없이 안에서 기뻐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권면 :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세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

권면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 말씀이 아닙니다. 구절을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보면, Let your gentleness be evident to all”  관용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관용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젊었을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늙은 하인이 아무 연락도 없이 아침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낮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날에 시킬 일이 많았는데, 하인이 오지 않아서 기분이 몹씨 언잖았습니다.

그런데 저녁 해가 질무렵에 시무룩한 얼굴로 나타나서 빗자루를 잡고 마당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타고르는 늙은 하인의 빗자루를 뺏아 던지면서 나무랐습니다. “당장 일을 그만두시오. 여기가 무슨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되는 놀이터인줄 아시오

 

그렇지만 늙은 하인은 아무 말없이 다시 빗자루를 주워들고 마당을 쓸었습니다. 타고르는 더욱 화를 냈습니다. “ 말을 무시하는 거요? 그만 두라는 말을 못들었소? 집에서 당장 나가시오

늙은 하인은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 담아둔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주인님, 번만 용서해 주세요. 오늘 아무 말씀 못드리고 늦게 나타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주인님, 어제 밤에 아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타고르가 얼마나 미안했겠어요.

사건 이후, 타고르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일의 시시비비를 따져보는 습관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면서  타고르는 분명히 관용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김세환목사, 크리스찬 타임즈,  2014. 10.28)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가질 관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감사한 일이 됩니다.  계절만 해도, 모든 계절이 감사합니다. 봄은 봄대로 감사하고,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감사합니다. 겨울도 감사합니다.

로마서8:28절을 믿기 때문에, 모든 일에 감사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good) 이루느니라

감사한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대해서도 관용적입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를 보충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관대할 같지만, 그렇지 않은 같습니다. 의외로 속이 좁습니다. 한국과 미국만 보아도 있습니다. 한국- 여당과 야당, 정치 색이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이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일년 내내 사사건건 서로 반대하고 비판만 합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같아요. 새정부가 들어선 1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트럼프 대통령지자들과 힐러리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용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지역이나,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관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권위를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관용적이셨나?

하루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 와서 보고하길,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 우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금하였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이르시길,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 우리는 보통 나를 위하는 사람만 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예수님은 넓게 보셨습니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도 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신만 가진다면 정말 많이 너그러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 마을을 지날 , 마을에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숙소를 제공해 주지 않은 같습니다. 화가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간청하길,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야고보와 요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조용히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9:50, 54)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생각이나 , 행동이 극단적으로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말씀을 어디서 하고 있습니까? 감옥 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옥에 갇힌다든지 자신이 어려움에 빠지면 관용적이었던 사람도 마음이 좁아지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기 쉬운데, 바울은 옥에 있으면서, 성도들에게 마음을 넓히고 관용적인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의 권면대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너그러운 부모, 너그러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권면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기도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그만큼 크고 작은 염려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 건강, 자녀,신분, 장래에 관한 염려들이 없을 없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고, 국가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엊그제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성도가 기도부탁을 하는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하다 말고 기도드린 적이 있습니다.

염려와 기도는 반비례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염려가 많아질 밖에 없습니다. 염려를 줄이거나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생기면 염려를 주님께 가지고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염려가 많은 사람으 많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기도할 , 그냥 기도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감사 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아직 기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기도가 따로 있고, 간구와 중보기도가 따로 있다고 알고 있는데, 바울은 간구할 , 먼저 감사기도를 드릴 아니라, 모든 기도와 간구가 감사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기도할 미리 감사하며 기도드려야 하는가? 모든 간구를 감사함으로 해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미리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감사기도 드리면  소원이나 계획대로 그대로 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의 뜻은 아닐지라도 기도하는 자에겐 최선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미리 감사함으로 기도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감사함으로 기도드릴 , 하나님은 반드시 마음의 평강을 허락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평강은 세상이 없는 평강,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우리 같이 본문 4:6-7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앞에서 바울이 기쁨에 대해 말씀했지만, 우리 인간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주범이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면, 환경적인 문제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건강이나 재정의 문제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이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에게서 기쁨, 행복을 빼앗아가는 주범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염려와 두려움, 불안과 같은 내적 감정입니다. 염려와 불안이 일어나면 건강한 사람도 건강에 대해 염려하게 되고, 불안한 생각이 들면 부자도 돈에 대해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에서 해방되고,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우선 마음의 평강을 주시고, 또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감옥 안에 살면서도 기뻐하고 평강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가 문제 해결의 키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염려가 밀려올 , 기도로 승화시킨다는 것입니다.

(1) 한나

사무엘상을 열면, 결혼 후에 아들이 없어서 곤란한 처지에서 눈물짓는 여인의 사연이 나옵니다. 여인의 이름은 한나입니다. 남편 엘가나에겐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는 브닌나, 다른 아내가 바로 한나였습니다. 느닌나에겐 자식이 있고, 한나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브닌나가 한나를 자식이 없다고 무시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가 있는 일이란 태의 문을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는 실로의 성소에 올라갈 때마다 더욱 간절히 기도했는데, 눈물로 기도하고, 통곡하며 기도하니, 엘리제사장에게 술취한 여인이란 오해도 받았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제사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술취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심정을 쏟아놓은 것입니다. 저를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세요. 너무 원통하고 속이 상해서 울며 기도한 것입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사무엘 선지자가 것입니다.

 

(2) 히스기야

히스기야 왕은 남유다 중에서 다윗을 본받은 선한 왕이라 칭찬을 받은 안되는 왕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히스기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 있습니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어느 위기가 찾아올 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찾아온 위기는 전쟁과 건강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 군대가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서 너는 이제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갑작스런 통보를 듣고 히스기야는 놀랐습니다. 그러나 절망만 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벽을 향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굴을 벽을 향했다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수한을 십오 연장하고, 너와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성을 보호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들으시고 눈물을 흘릴 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눈물짓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최선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해도, 나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목사 중에서 최근에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한홍목사는 그의 책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면, 자기가 원한대로 적은 거의 없지만,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 인도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중학교 미국으로 이민간 나는 원래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목사가 되게 인도하셨다. 목사가 이후에는 교포 교회를 목회하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꿈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로 돌아오게 하셨다. 한국에서는 년간 부목사로 섬기다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계속 있게 하셨고, 개척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교회 개척하게 하셔서 지금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한홍, 하나님이 내시는 , p.71)

과정에서 위기와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뜻하지 않은 일들, 사건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 한목사를 최선으로 인도하셔서, 지금 다니엘처럼 한국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무엇으로 확신할 있는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응답의 싸인으로 주시는 것은 마음의 평강(shalom)입니다. 세상이 없는 평강이 임하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각으로 이해할 없는, 놀라운 평강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은 사람들과 많이 다를 밖에 없는데, 그것은 무슨 외적인 모습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항상 모든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내적 성품이 달라지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감사는 무엇 때문에 하는 감사가 아니라 절대적 감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구원에 대해 감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님이 오셔서 언제나 함께 하심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둑 아마추어는 프로 고수가 두는 수가 이해가 안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처럼, 고수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우리가 비록 이해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감사하다보면, 하나님이 선하신 뜻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는다고 염려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도 염려할 밖에 없고, 두려워할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위기에 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염려 대신에 기도할 있고, 불평 대신에 감사할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기도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있고, 들을 있고, 말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각과 청각에 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는 사흘만 있다면좋겠다고 했습니다.)

첫째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삶을 가치있게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았던 그녀의 얼굴을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모습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러고는 밖으러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나서 저녁에서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겠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흘 동안만이라도 있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김치절, The Words, 2017. 11 , p.20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 감사주일에 다시 지난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들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아가서 감사할 없는 상황에서조차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감사 기도를 드림으로써, 언제나 마음에 평강을 누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