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중에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시받는 계명이 있다면 아마 7계명, ‘간음하지 말라 계명일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인내심도 없습니다.   결과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이혼으로 깨지는지 모릅니다. 성중독이나 동성애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음란물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자, 옳지 못한 방법(비정상적인 방법)으로그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7계명은 6계명과 같이 아주 짧은 계명입니다. 마디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말하려고 하는 주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행복과 직결되는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 가정, 부부, , 친밀감, 기쁨, 행복과 같은 핵심적 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간음은 사전적으로 보면, 혼외정사를 말합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7계명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은 하나님이 만드신 선물이며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한계를 벗어나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 그것이 간음이 되고, 무서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계명을 축소시키지 않고 확대 적용하셨습니다.

다시 본문 마태복음 5:27-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7계명)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백체 하나가 없어지고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내버리라 백체 하나가 없어지고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간음은 행위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이뤄지는 간음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본다는 - 한번 바라보거나 마음에 잠깐 음란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음욕을 품고 본다는 것은 영어로 looks at(on)으로 나와 있는데, 한동안 계속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루터가 얘기한 것처럼,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없으나 머리에 집을 짓게 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음욕을 품고 본다는 것은 새가 머리 위를 나는 정도가 아니라 새가 머리에 집을 짓게 하는 것과 같이, 음란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행위로 나타나지 않아도 간음한 것과 같다라는 말씀입니다.

29절과 30절에 만일 오른 눈이 범죄거든 빼버리라, 만일 오른손이 범죄하거든 찍어내버리라는 표현- 문자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눈을 뽑고, 손을 잘라내야 한다면 세상에 온전한 지체를 가지고 다닐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은 눈을 뽑고, 손을 찍어내는 심정(각오)으로 죄를 경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죄의 위험성,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있습니다.

 

31절과 32절에서 예수님은 이혼에 관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 또는 남편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결혼은 둘이 몸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10:8-9)

예수님이 이혼 자체를 완전히 금한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사유가 있다면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격으 차이나 두번 말다툼했다고 이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혼은 몸을 이뤘다가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아프겠는가? 자녀들이 얼마나 상처받겠습니까?

 

결혼과 가정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에서 핵심 작품이라고 있습니다.

1:27절에 의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최초의 플랜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2장에 가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주인공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뤄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중매도 하시고 주례사도 주셨습니다. 모든 가정의 부부들이 들어야 말씀입니다.

2:24-25,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최초의 부부였던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주례사를 분석해보면, 중요한 가정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1)    결혼은 반드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적으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문화가 있지만, 결코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2)    보통 결혼하면 여자가 시집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에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존도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이제 부모를 의존하던 단계에서 부부가 하나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남자가 결혼했는데도 계속 아내와 연합되지 못하고 부모 의존적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3)    부부가 결혼하면 이제 몸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 몸처럼 모든 면에서 연합되고 결합되기 때문에 분리될 없는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이제 함께 마음, ,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정 기간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스개소리로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하면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 영적으로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결혼하면 몸이 되기 때문에 음행한 연고 외에는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4)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결혼하면 둘이 몸이 되기 때문에 부부 관계에서 진정한 친밀감, 사랑, 평안, 위로 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위로를 누리지만 부부의 사랑 안에서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에서 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한 것을 결혼 관계 안에서만 즐기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귀한 것일수록 싸서 깊은 곳에 보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부부 사이에서 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이뤄지도록 한계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은 불과 같다고도 있습니다. 불이 아궁이 안에 있을 , 밥을 짓고, 난방을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 밖으로 나오면 집을 태울수도 있고, 산과 들도 태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이 결혼 관계에서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울타리를 벗어나면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에는 성을 우물물에 비유합니다.

5:15-19절을 보세요.

너는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샘물을 집밖으로 넘치게 하며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언서의 말씀은 앞뒤의 문맥으로 보면,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 외의 다른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문화는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음행, 불륜이나 간음, 혼전 성관계 등에 대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은근슬쩍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십계명에서 명령하는 것처럼, 간음은 엄청난 죄이며,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미화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간음은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자녀들, 가족들, 친구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가져다 주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송두리체 불행의 나락에 떠러지게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에서는 간음이나 음행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적나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언6:27-29,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32-33,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없게 되나니

 

지난 주에도 우리가 다윗의 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간음하고, 살인까지 저질렀을 , 그의 가정과 그의 나라에 어떤 불행한 일들이 몰려왔습니까?

다윗이 죄를 범했을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심판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남의 아내를 빼앗을 것은 파렴치한 짓이라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이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용서는 받았지만 말씀대로 다윗 집안에는 불행한 칼의 재앙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기는 죽고, 딸이 이복오빠에게 강간당하고, 아들은 이복형제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모든 악들이 다윗의 안에서 일어나게 것입니다. 나중에 아들에 의한 반역 사건이 일어나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밤에 도주해야 했습니다.

삼손은 이방여인 들릴라의 꾐에 빠졌다가 어떻게 되었나요?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들려 눈이 빠지고,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사라는 존귀한 직분을 잃고 고통 속에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성적인 죄에 빠진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을 없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지지 않을 죄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된 여인들이 나옵니다. 중에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있습니다. 성중독에 빠진 여자 같이 보입니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현재의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도 부끄러워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때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뜨거운 한낮에 가곤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인을 만나주셨으며,대화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 구원에 대해 알게 하셨습니다. “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여인은 메시야를 만난 기쁨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가서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거짓된 위로나 친밀감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위로, 평안, 친밀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여인이  이른 아침에 간음 현장에서 붙들려 예수님께 끌려 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목적으로 여인을 데려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 명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풀어주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것이요, 돌로 죽이라고 하면 로마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 됩니다.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히가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요? 성경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십계명을 쓰셨을 것이다. 다른 학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지은 죄들에 대해 쓰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모릅니다.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눈을 들어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허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을 받아주셨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적인 죄에 빠지지 않고, 신성한 결혼을 지킬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순결한 삶을 있을까?

1)      제일 먼저 생각해 보야하는 것은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적인 욕망과 싸워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그런 환경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마디로 얘기하면,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같이 자자고 요구했을 , 어떻게 했습니까? 평상시에는 함께 있지도 않았고,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요구했을 때에 요구를 물리치고 무조건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유혹받을 있는 환경에 가지 않는 것이 지혜요, 그런 환경에 되도록이면 빨리 도망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눈을 돌리고, 가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2)      둘째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임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어떤 고백을 합니까? “내가 어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간음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이란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요셉은 비록 사람의 눈은 피할 있어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 음란한 죄에서 벗어날 있습니다.

3)      셋째로, 음란이나 간음 죄에서 벗어나려면 항상 부부의 친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륜이 끼어들 없는 친밀한 부부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데서 친밀감을 찾아서는 되는 것입니다.

 

어떤 미국 목사님(J. John) 불륜이 끼어들 없는 관계를 만드는 이란 강연에서 성공적인 부부 관계를 위해 다섯 가지 R 명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J. John, 십계명, p. 98.)

(1)    Respect(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왕처럼 대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비결은 간단합니다. “아내를 왕비처럼 대접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5:33) 권면하였습니다.

(2)    Responsibility(책임감을 가쟈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탓하지 않고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깁니까? 누가 잘못해서 생기나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 선악과를 따먹고 핑계를 아내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어 내가 먹었나이다”(3:12)

잘못이 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을 지면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입니다.

(3)    Relate(서로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부부가 하루 동안 대화 시간이 10분도 된다고 합니다.

(4)    Romance

하나님께서는 부부간에 로맨스가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신혼 때만 로맨스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5)    Resolve

결혼 서약을 지키고, 행복한 결혼을 위한 노력을 것을 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아내가 아닌 여자와는 결코 둘이 만나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도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결심도 필요한 것입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을 ,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스킨십을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줄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봉사를 받을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선문을 받을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륜이 끼어들 없는 부부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약속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서약 시간입니다. 주례사 듣는 시간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서약을 하죠? 조금씩 표현은 달라도 주제는 같습니다.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 없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책임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입니다.

서약 속에 불륜이나 간음이나 음행이나 이혼과 같은 끔찍한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결혼 서약은 단순한 남자와 여자의 약속 이상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것입니다. 일생동안 변치않고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하고 위하고 아껴주며 것을 서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심을 굳게 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결혼 서약은 하나님과의 서약임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도 영적 싸움입니다. 악한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포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가정 생활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8)

“Purity is power. Holiness is pow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결함이 힘이고, 거룩함이 능력입니다.

요셉처럼 순결을 지키시고, 가정을 거룩한 가정으로 지켜 계속 경건한 후손들이 나오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