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십계명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대하면서 어떤 분들은 계명들은 3500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율법이 아닙니까? 신약 시대에 사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특히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맞지 않는 계명이 아닐까요?”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십계명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주신 법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크리스천들에게도 주신 법입니다. 영원히 변할 없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달라도 십계명을 바뀔 없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면,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셨겠습니까?

 

율법(계명) 용도는 크게 가지로 요약할 있습니다.

첫째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시계가 있으므로 시간을 있듯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알듯이, 율법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2) 그래서 둘째로,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을 몽학선생(초등 교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 함이라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게 되는 것처럼,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율법의 번째 기능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것을 율법의 3 사용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율법 준수나,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거룩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능은 원래 십계명과 율법을 주실 때부터 변치 않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율법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정도가 아니라, 형제에 대해 노하는 , 형제에 대하여 라가(바보, 멍청이)라고 욕하는 것도 일종의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간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도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은 아무도 없겠지만,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에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없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십계명은 크게 둘로 구분해 있습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계명과, 5계명에서 10계명까지 인간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계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율법사로부터, “선생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계명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셨을 , 계명으로 요약해서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22:35-40,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먼저 신명기 6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은 마음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길 없다는 말씀입니다. 배우자의 마음도 둘로 갈라진 마음을 원치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목숨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 의지를 다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과 목숨을 다하는 ,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울까요? 저는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어떤 면에서 (의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제일 어려울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정도의 사랑을 요구하실까요? 우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만큼 사랑하셨는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둘째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은 우리에게 다른 좋은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고  섬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속는 것이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같이 중요한 계명으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에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의 기준으로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을 사랑할 , 자기 자신처럼, 또는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사랑하라고 까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대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둘째 기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주실 때도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서해 같이 너희도 남을 용서하라”(18:33)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10:8) 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유명한 구절인 요한일서3:16절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 바울도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다”(13:10)라고 했으며,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4:32)

그러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만큼만 이웃에게 베풀면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기준은 사회의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 주님께 하듯하라는 것입니다.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심판 때에 임금께 칭찬받은 사람과 책망받은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날에 칭찬받은 사람들은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섬길 , 주님께 하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책망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염소 편에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않았다라고 하자,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을 보았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임금님이 어떻게 말했나요? “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된다는 비밀을 몰랐던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3계명은 유대인들이 가장 조심해서 지켰던 계명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계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성경을 읽을 ,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나 야훼로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전통에 따라서 오늘날도 성경 번역할 여호와 대신이 주님’, ‘Lord’ 번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3계명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부르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든지 부를 있습니다. 찬양하거나 기도할 우리는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나 존귀하기 때문에 함부로 부르거나 오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옳지 못한 목적에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지칭할 , 대표적인 것이 가지 있습니다. 하나가 엘로힘이고, 다른 하나가 여호와 또는 야훼입니다.

엘로힘 우리 말로 번역하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단수로 하면 엘이고 복수형이 엘리힘입니다.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전능하신 하나님 히브리어로 샤다이입니다. 17: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구십구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구절에 나오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샤다이(Almighty God)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엘로힘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냥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여호와입니다. 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받으면서, “자기가 이집트에 가서 하나님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면, 그들이 그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하나님이 주신 이름입니다.

나는 나다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란 명칭이 창세기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해 있습니다.

외에도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씩 더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예를들어,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할 생긴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여호와,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으로 승리의 하나님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여호와 샬롬- 평화,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망령되다 말을 요즘에 사용되지 않는 말입니다. 망령들었다는 말이 쓰이는데, 말은 정신이 나간 ,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을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라고 번역했고, “영어 NIV성경에서는 “You shall not misuse the name of the Lor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한 가지 예를 찾아보면, 첫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사건입니다. 레위기24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 어머니는 이스라엘 여자인데, 아버지는 이집트 사람인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아버지는 이방인이라고 해도 어머니가 이스라엘 사람이면 이스라엘 사람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했는지 모르지만 싸우다가 화가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서 욕을 같습니다. 그는 아마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집트의 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위대하고 주장한 같습니다.

사건은 당시 굉장히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를 일단 가두어 두고, 문제를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엄격했습니다. 그의 저주의 말을 들은 사람이 증인으로서 그의 머리에 손을 얹게 하고, 사람들이 돌로 그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회중이 돌로 그를 것이니라 했습니다.(24:10-1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는 다른 예를 찾는다면, 거짓 맹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19:12절을 보면, “너희는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사람은 때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기 위해 맹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맹세를 하다보면, 자기 정당화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늘로도 하지 말고, 땅으로도 하지 말고, 예루살렘으로도, 심지어 자기 머리로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맹세하다보면 거짓이 틈탈 있고, 맹세하고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강한 맹세치고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손에 장을 지지겠다, 성을 갈겠다라고 호언장담하고 지킨 예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이 얼마나 죄인가? 신명기18:20절에 의하면, 거짓 예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마음대로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그러면 거짓 선지자인지 선지자인지 어떻게 있을까요? 결과(열매) 보면 있습니다.

18:22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원칙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만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선지자가 마음대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거짓 맹세와 거짓 예언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예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성도가 삶으로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사무엘 상에 보면, 엘리제사장 시대에 엘리 제사장 가문은 타락하였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 전쟁이 났을 , 언약궤를 무슨 부적처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도 법궤만 메고 전쟁터에 나가면 법궤가 그들을 지켜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죠?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했으며, 법궤로 빼앗겼습니다.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도 충격으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마침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언약궤는 빼앗기고,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진통을 호소하다가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고 죽어갈 , 옆의 여인들이 두려워 하지 마세요. 아들을 낳았어요라고 하자, 아무 소리 하지 안하다가 아기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라고 마디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가봇” –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라는 뜻이었습니다.(삼상4)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마태복음7:21절에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음이 말로써 증명되기 보다는 삶으로써 증명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삶으로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무서운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수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뜻이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양 받으실 이름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시편에 보면, “주의 이름이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라, 찬양하라 명령이 없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에서 번째 간구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저주할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축복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있습니다. 민수기6 24-27절을보세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이 같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신약 시대엔 모든 성도가 같은 제사장으로서 축복의 권한이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많이 축복하시고, 서로 서로 축복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게 기도할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기도할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뜻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라는 이름입니다. 세상에 예수의 이름보다 존귀한 이름, 능력이 되는 이름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리라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14:13-14,너희가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려 하심이라.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놀라운 특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24,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런 약속을 알고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결코 제한 받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우리 구주 예수의 이름은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도 일으키고,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 나면서부터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능력이 있어서 그를 고친 것으로 생각하자, 베드로가 어떻게 외쳤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경건과 능력으로 사람을 걷게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아니라 예수 이름이 너희가 아는 사람을 성하게 하였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

사도행전 4장에서는 사도들이 공회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을 ,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일을 행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강조하면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구원의 이름이요, 능력의 이름이라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넷째로, 성도가 삶으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바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라거나 너희는 교회의 빛이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금과 같이 방부제 역할을 하고, 빛과 같이 어둠을 몰아내는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곳은 세상임을 말씀하신 것이비다.

 

바다는 3% 소금만 있어도 썩지 않습니다. 세상이 부패하는 책임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음식에 적은 양만 넣어도 맛이 납니다.

어둠이 강한 같지만, 빛이 강합니다. 빛을 비추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통해 빛을 비추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5:16절을 보세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이 대표적인 빛의 열매입니다. 또한 정직과 진실함도 빛의 열매입니다.(5:9)

성도가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하면, 누가 영광을 받으시나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그들 세상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못할 , 성도가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짓밟힐 아니라 심각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맛잃은 소금처럼 짓밟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도 욕을 먹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릴 것이 아니라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1)    우리는 날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있습니다.

(2)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이 기도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있습니다.

(3)    나아가서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할 , 세상 사람들조차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을 통해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날마다 높임 받고 영광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