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리스도인이 컴퓨터로믿는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를 치려고 하다가 잘못 쳐서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쳤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 미국 크리스천인 것 같습니다.

영어로 Believing Christian이란 단어를 Behaving Christian이라고 친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기독교를 치다가기도교라고 칠 때가 있습니다. 오타를 쳐 놓고도 그렇지, 기독교는 기도교가 되어야 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Believing Christian Behaving Christian이 되어야 하는 것, 즉 믿는 그리스도인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오타지만 의미있는 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believing 크리스천이 될 뿐 아니라 behaving크리스천(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십계명은 믿음에 대해서도 말씀하지만 믿는 사람의 행동, 삶에 대해 더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이 어떤게 행해야 하는 가르치는, 헌법과 같은 말씀입니다.

십계명은 성경의 핵심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일생동안 잊지 말고 기억하고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잊지 말라고 돌판에 직접 새겨 주셨다고 믿습니다.

 

율법과 은혜 사상은 성경의 핵심 사상인데 율법과 은혜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구약은 율법만 강조하고, 신약은 은혜만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분들은 구약에서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신약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약에서도 구원을 말할 때는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얘기할 때엔 구약이든 신약이든 율법(계명)을 말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율법(계명)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활지침이 됩니다. 율법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죄를 깨닫게 함, (2) 그리스도에게 인도함, (3) 성도의 생활 지침(물론, 구약의 제사와 관련된 율법은 예수님이 완성하심으로 더 이상 필요없게 됨)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오늘 본문은 십계명 중에 서론과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서론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어떤 분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은혜로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령을 주시기 전에 먼저 구원의 은혜를 베풀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2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것은 계명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분들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잘 모를 때 어렵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의 계명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20:1-2절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나는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란 이름은 출3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해 주신 이름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that I am”이란 뜻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성, 초월성, 주권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신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2)  둘째로, 2절에 계시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이십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은혜로 구원해 주셨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Exodus 사건이 시내산 언약 사건보다 앞섰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베풀어졌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웠습니다.(15:16)

 에베소서 2:8-9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행위로 말미암을 것이 아니라 먼저 은혜에 의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에서 은혜로 구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십계명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이고, 그 다음에 계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먼저 깨닫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계명이 가벼워지지만 은혜를 모르면 계명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십계명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셋째로, 20:2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네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민족과 달리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신 점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계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서론적으로 주신 말씀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땡,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드디어 본문 3절부터 십계명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5장 두 군데에 십계명으로 알려진 계명이 나옵니다. 두 돌판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두 돌판에 몇 개씩 구분되어 쓰여졌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십계명은 틀림없이 10개의 계명인데, 성경에 정확히 numbering이 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는 어떤 것이 제1계명이고 제2계명인지, 또는 어떤 것이 제10계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서론(20:1-2)이 제1계명이 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1-2계명(3-6)이 묶여서 제2계명이 됩니다.

천주교에서는20:1-3절까지가 1계명이고,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은 1계명의 부연설명이라 생각하여 빼고, 7절 말씀(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 제2계명이 되고, 그 대신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눠서 십계명의 숫자를 마춥니다.

우리 개신교와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서론(1-2) 3절을 합쳐서 제1계명으로 삼고, 우상을 만들지 말고 숭배하지 말라는 4-6절을 제2계명으로 삼습니다.

 

유대교와 천주교에서는 제1계명과 2계명은 비슷하거나 보충한다고 보기에 하나로 묶거나 생략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1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은 세상에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에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가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결코 다른 종교, 다른 신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어떤 상을 만들어 섬겨서는 안된다는 계명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올바른 방법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1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관한 계명으로써 여호와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실 분이라는 뜻이요, 2계명은 예배 방법에 관한 계명으로서 하나님을 경배할 때 올바른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계명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이 있고, 2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되듯이, 다른 신을 두지 않아도 올바른 방법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듯이 말입니다.

 

(다양한 신론)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고, 신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합니다. 무신론(atheism), 다신론(polytheism), 범신론(pantheism)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세상에 오직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15:11(모세의 찬양),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2:11(기생 라합의 고백),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성경 시대에 근동 지역엔 수 많은 거짓 신들이 존재했습니다. 1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유혹들이 많았습니다.

고대 가나안 땅에 있었던 신들 중 대표적인 신이 바알과 아세라 신입니다.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이었습니다. 바알은 농사의 신이요, 풍요의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비를 내려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은 태양신도 아니요, 바알신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연의 모든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1계명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적인 예가 열왕기상 18장에 나옵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 장면입니다. 엘리야가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바알선지자(450)와 아세라선지자(400) 도합 850명이 하루 종일 자기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할 것을 구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거짓 신은 결코 응답하는 신이 아닙니다. 죽은 신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십니다. 엘리야 한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계명에서 선언하는 것처럼 세상엔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참 신은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경배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유혹했을 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4: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 사랑하시고, 하나님만 섬기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제1계명은 바뀔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종교 다원주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우리 앞에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2계명 20:4-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계명은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이라면, 2계명은 하나님을 섬길 때, 올바른 방법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의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람들이 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절을 하며 섬길까요?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물건임을 사람들을 알면서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으로써, 인간의 악한 욕망을 만족시켜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기에 잘못된 것을 구하는 자녀에게 주지 않고 책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사악한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만들어 섬긴 대표적인 예가 두 개 나오는데, 하나는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40일 금식하면서 율법을 받는 동안, 모세의 소식이 없자, 산 아래에서 아론과 백성들은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이라고 하며 춤추며 섬겼던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신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또 하나의 예가 열왕기상 12장에 나옵니다. 북왕국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베델과 단에 두고 섬기게 한 사건입니다.

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섬기게 했는가? 욕심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북왕국의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 때에 예루살렘을 계속 방문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유다왕 르호보암에게로 향할 것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베델과 단 두 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임의로 제사장까지 세워서 우상을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아론과 백성들, 여로보암과 북왕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옳지 못한 방법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 권력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의 위험성에 대해 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위험한 우상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도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욕심, 탐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고, 권력이 우상이 되고, 쾌락이 우상이 되고, 과학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요,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고 신뢰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2계명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20:5b,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러분, 질투는 부정적인 단어지만, 한편 질투는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질투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우상 숭배를 간음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다면 이스라엘을 사랑했던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음에 불이 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죄를 갚을 때엔 삼사 대까지 갚으시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바칠 사랑을 우상에게 바쳐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겐 은혜를 베푸시고, 우상 숭배자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기독교)에 너무 빠지면 광신자가 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 광신자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누가 광신자가 되었다면 참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가까이 한 것입니다. 자기 열정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 정상적이 되고, 더 분별력이 생기며, 생활도 성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26, 바울) 하나님을 아무리 사랑하고 가까이 해도 광신자가 되거나 미치지 않습니다. 더 정상적이고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김서택, 위대한 언약2, p. 137)

 

(백낙준박사의 아버지에 관한 간증)

연세대에 가면 백낙준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냈으며, 문교부장관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런데 백낙준박사 이야기 중에서 그의 아버지의 회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아버지 백사경씨는 황해도에서 시각 장애인으로 점쟁이였습니다.

보통 점쟁이하면 여자 무당이 많은데, 백사경씨는 남자 무당으로서 점을 잘 친다하여 손님들이 많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아내를 버리고 첩을 얻어 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자가 나타나서 그에게 “당신의 영혼과 후손의 장래를 생각해서 점치는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씨는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며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전도자도 지지 않고 “당신이 이렇게 살면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손들도 망할 것이오”라고 하며, 예수를 믿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날 이후로 무당 백사경씨는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면 그 전도자가 한 말이 귀속에 맴돌았습니다. 특히 자식이 망한다는 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교회를 찾아갔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백씨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전재산을 털어서 예배당 짓는데 사용하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맥힌이라는 선교사가 백씨와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서 교회에서 사찰로 일하게 하였으며, 아들 백낙준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학교에 보냈으며, 중국에 보내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미국으로 보내 유명한 파크 대학, 프린스톤 대학, 예일 대학에서 유학하게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연세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결단, 우상 숭배, 무당을 집어치우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결국은 자신의 구원 뿐 아니라 아들이 귀하게 쓰임받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온 가문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에 백사경씨가 그가 전도자의 전도와 성령의 음성을 뿌리치고 계속 무당으로 점치는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그의 후손은 삼사 대까지 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 대까지 내려가는 은혜와 복을 받고 싶습니까? 1계명과 2계명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결코 우상 숭배 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계명은 축복의 비밀이 담겨 있는 계명입니다. 축복의 열쇠가 되는 계명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결코 우상에게 돌리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