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출애굽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도 없이 무탈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는 성도가 아무 어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살다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여러 가지 연단과 훈련을 통해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난과 훈련을 통해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성도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목적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훈련소와 같은 곳입니다. 땅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영원한 본향(천성) 향해 가는 존재가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 사람들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전쟁을 경험하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지중해변길로 해서 가나안 땅으로 직행하지 않게 하시고, 홍해길로 돌아서 가게 하신 이유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13:17 말씀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런데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길로 행한지 2개월 시점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전쟁을 치루게 것입니다.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막의 뱀처럼 교활했던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급습하였습니다. 아말렉은 가나안 남쪽의 사막 지역에 살면서 산적처럼 출몰하던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과 오랜 세월 악연을 맺게 민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우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과 상상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전쟁의 발단의 배경을 있습니다.

25:17-18절에서 모세는 전쟁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그들이 길에서 너희를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양식도 떨어지고, 물이 없어서 고생할 , 사막의 행군으로 지쳐 있을 , 아말렉이 비겁하게 뒤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하나님을 공격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르비딤에서의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전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하나라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데, 모든 전쟁의 승리의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교훈을 주는 전쟁입니다. 나아가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악과 사탄과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의 승리 원리에 대해서도 배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말렉과의 전쟁에 대해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갑자기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이 그의 이름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미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거나,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게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중요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군사들을 모집해서 나가서 싸우라. 내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꼭데기에 서리라

여호수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순종이 이스라엘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세의 지시대로 하여 군사들과 함께 나가서 아말렉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여호수아와 군사들이 아래에서 싸우는 동안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꼭데기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지팡을 잡고 손을 들었습니다.

전쟁이 치열해지고 일진일퇴로 백중세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래의 전쟁이 위의 모세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군사들은 우세하다가도 갑자기 밀리게 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위의 모세와 아론과 훌은 이유를 알게 것입니다.

본문 17:11절에 나와있듯이, 모세가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세도 인간인지라 피곤하여 계속 팔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돌을 주워다고 모세 아래에 놓고 위에 앉히고, 아론과 훌이 온종일 쪽에서 사람이 들어 올리고 있게 것입니다. 결과 일진일퇴하던 전쟁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것입니다. 모세의 팔이 올라간 상황에서 여호수아와 군사들은 있게 싸워서 승리를 쟁취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여러분, 아말렉과의 전쟁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을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승리를 위해서는 영적 전쟁의 특성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다른 전쟁도 그렇지만, 특히 교활한 아말렉과의 전쟁은 일반적인 전쟁과 많이 다릅니다. 지휘관 여호수아와 군사들의 전투 능력 못지 않게, 위에서의 모세의 팔에 아래서의 전쟁의 승패가 좌지우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명한 에베소서 6장의 영적 전쟁에 관한 말씀에서 영적 전쟁의 특징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싸움의 대상이 다릅니다. 영적 싸움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 악한 영입니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다시 말하면 영적 싸움은 앞에 있는 어떤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악한 영들, 귀신들, 어둠의 세상 주관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의 특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싸움에서 빈번하게 패하면서도 이유도 모르고 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그래서 싸움의 방법, 사용할 무기도 일반 전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고,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하고, 항상 기도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기도로 악한 영과 싸워야 하고,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데, 앞의 가족들과 싸우고,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적이 아니라 아군과 싸우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영적 전쟁의 특성을 몰라서 적과 싸우지 않고, 사랑하고 용서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형제들과 싸우고 분열하여 왔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마귀는 얼마나 좋아할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6 13-18)

(3)    싸움의 장소도 다릅니다. 일반 전쟁이야 산과 , 또는 도시 복판에서 싸우지만, 영적 싸움의 장소는 생각, 마음(태도와 감정), 입이 영적 전쟁의 대표적인 장소가 됩니다.( 셔만)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영적 전쟁의 특성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3-4절에서도 전쟁의 특성이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싸움은 일반적인 싸움과 다르기 때문에 무기도 다르고 싸우는 방법, 전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가 적인지 분명히 알고 싸워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무기가 아닌 영적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어디가 치열한 싸움터인지를 알고 싸워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 승리를 위해서는 중보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이 주는 교훈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여호수아와 그의 군사들이 아무리 용맹스럽게 싸운다고 해도 그날의 전쟁의 승패는 위의 모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세의 손이 내려와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피곤하여 이상 손을 없을 , 아론과 훌이 도와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하였을 , 결국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팔이 올려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본문에선 어떤 설명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도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세가 팔을 들고 있었다는 것은, 모세가 기도의 팔을 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할 손을 들고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간절함의 의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의미로 손을 들고 부르짖기도 하였습니다.

시편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장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변모하셔서 모세와 엘이야를 만나 대화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너무 신비스런 사건을 보고 엉뚱한 소리까지 했습니다.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합시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아래에서 제자들이 어떤 일로 인해서 사람들로 둘러쌓여서 서기관들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변론의 주제는 귀신들린 어떤 아이를 부모가 제자들에게 데려와서 고쳐주길 바랬는데,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를 불러서 언제부터 그랬는지묻고, 그의 아버지가 있거는 우리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사 도와주세요라고 하자, “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면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요?”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은 신적 능력이라기 보다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기도로 무장될 , 악마와 싸워 승리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영적 싸움에서 이길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땅에 계실 아니라 승천하신 지금도 성도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성령님도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기도를 돕고 계십니다.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예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도 중보 기도자로 불러서 동역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란 쉽게 정의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것이 없어서 5 이상 기도하기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5분도 기도할 것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고통받는 지체들과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들을 시간도 금방 지나갑니다. 사람들의 이름만 불러도 시간이 그냥 가는 것이죠.

제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러분의 기도가 없다면 목회 사역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열매도 없을 있습니다. 설교이든 전도이든 무슨 사역이든 중보기도자들의 기도가 없는 것은 상상할 없습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서로를 위해 기도로 세워가는 관계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해 축복하고, 성도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할 하나님의 교회는 왕성하고 부흥하게 것입니다. 서로 기도 없이 살며 사역하는 것은 마치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의 들린 팔이 없이 여호수아가 이기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오직 위의 모세의 팔이 올라갔을 때에, 아래의 여호수아 군대가 승리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싸움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기도로써 가장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의 팔이 올려진 것은 단순히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만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17:9)

그러므로 모세의 팔이 올려진 것은 모든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전쟁에서 항상 승리를 결정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패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왕은 싸우러 나가기 전에 반드히 하나님께 묻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을 손에 붙였느니라라는 응답을 받고 나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말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목을 베고 블레셋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주어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알게 하겠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여호사밧 시대에 아람이 유대를 침공했을 야아시엘 선지자가 말입니다.

역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20:15)

시편 24편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24:7-8,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셋째로, 영적 승리를 위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멜렉과의 전쟁이 주는 교훈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각개전투보다는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협력에는 종류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우선, 위에서 기도하던 모세 평지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여호수아와의 협력입니다. 둘의 협력이 없었다면 결코 그날 승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방에서 싸우는 사람과 후방에서 싸우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 전쟁에서도 전방에서 총칼을 들고 싸우는 보병만의 싸움으론 이길 있습니다. 후방에서 계속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대포로 지원하고, 군수 물자로 지원하고, 통신으로 지원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면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육해공군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에 따라서 지체들이 행하되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 이야기에서 종류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팔에 힘이 빠졌을 곁에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들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협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홀로 싸운 것이 아니라 그의 병사들이 함께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의 일을 , 사역을 혼자하려고 하지 말고 팀을 이뤄서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리더인가? 리더는 유능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팀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팀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혼자 잘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 함께 하는 사람이 훌륭한 리더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45개의 목장이 있는데, 어떤 목장이 되는가? 제일 중요한 가지 요소를 들라면, 목자와 목녀를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느냐 협력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자와 목녀가 부족해도 목원들이 하나가 되어서 목자를 돕고, 마음 뜻이 되어서 섬기면 목장은 아주 좋은 목장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영혼구원과 제자삼은 일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있어서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모세와 아론과 훌처럼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여호수아와 그의 군사들처럼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팔을 사람과 손에 칼을 잡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에 하나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구경꾼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원리는 선교에 적용하면, 가던지 보내던지 하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있습니다.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가든지, 아니면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면서 보내는 후원자 역할을 하든지 중에 하나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CGN TV에서 특별제작한 블렉 마운틴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타리를 보았습니다. 노스캘로라이나 블렉마운틴에 살고 있는 한국에 파송되었던 미국 은퇴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 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헌신했던 미국 장로교 은퇴 선교사들이 작은 도시에 살면서, 중보기도로, 작은 물질로 북한 선교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여수 나병환자 병원인 애양원에서 섬겼던 우월순(R.M. Wilson) 선교사님의 후손도 있었고, 한남대를 세운 윌리엄 린튼, 호남 지방에서 순천을 중심으로 600 교회를 세운 웰리엄 린튼의 아들 린튼, 그들의 후손들, 지금도 블렉 마운틴에 살며 유진벨 재단을 통해 북한의 결핵 퇴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를 이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우리 민족을 품고 기도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라고 생각하는 같았습니다. 그들은 젊었을 때엔 여호수아처럼 현역으로 일했는데, 이제 모세처럼 팔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 사업에서 열외로 빠져 있어도 되는 성도는 없습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중에 하나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팀에 소속되든지 여호수아의 군사 팀에 소속되든지 중에 하나가 되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크게 종류의 전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위한 전쟁, 거룩을 위한 전쟁, 선교(영혼구원) 위한 전쟁 등입니다.

(1)    구원을 위한 전쟁입니다. 전쟁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승리하셨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앞에서 구원을 위해 바로와 싸울 필요가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보탤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셨고,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24,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2)    번째 영적 싸움은 거룩을 위한 싸움입니다. 거룩을 위한 싸움은 죄와의 싸움이기에 우리도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본문의 아말렉과의 싸움은 거룩을 위한 싸움일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악한 마귀,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도 우리의 힘만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모든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손을 같이 성도는 중보 기도의 손을 들고 기도로써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가장 힘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기도에 힘쓸 것을 부탁하시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부탁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악한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없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로 무장할 , 능히 악한 자의 공격을 막아낼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건장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기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동 중에 노동입니다. 사역 중에 사역입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있으니 피곤하여 손이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옆에서 모세를 도왔습니다. 기도도 항상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방에 들어가 혼자 하는 기도도 있고 함께 모여서 힘을 합쳐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할 베드로의 손과 발의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린 것처럼, 죄의 사슬이 풀리고 닫힌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2)

(3)    번째 영적 싸움은 영혼구원을 위한 싸움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상에는 영혼들을 두고 항상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은 죄의 권세를 이용하여 계속 인간 영혼들을 죄의 노예로 가두어 두길 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빛으로,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옮겨오게 하려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적군이나 아군이냐가 있지, 중간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군인이 말한 것처럼, 전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지면 끝장입니다.(드라마 로드 넘버 ’)

여러분, 죄와의 싸움, 악한 마귀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있을까요? 마귀의 지배 아래에 있는 영혼을 구해내는 싸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의 승패는 기도의 손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오직 기도로써 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싸워 이길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강한 군대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팀으로 싸우는 군대입니다. 반면에 약한 군대는 오합지졸처럼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된 군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항상 협력하고, 거룩한 중보기도의 손을 들고,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계속 싸워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