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광야 생활은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훈련을 받아서 강한 군대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여러분, 강한 군대가 되는 길은 평상 시에 얼마나 훈련이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군인에겐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배웁니다. 먹는 , 잠을 자는 , 행진할 질서를 지키는 등을 배웁니다. 군인이 되면, 먹는 것이든 잠을 자는 것이든 맘대로 없습니다. 식사 시간에 맞춰서 먹어야 하고, 잠도 취침 시간에 맞추어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 훈련이 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군사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힘듭니다. 자유가 없고,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고, 기초 체력 훈련, 군사 훈련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훈련이 몸에 배기 시작하면 이제 괜찮습니다. 오히려 건강해지고, 늠늠한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군대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을 군사에 비유하였습니다. 딤후2:3-4,너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한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게 하기 위해 광야 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로 훈련 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피할 없습니다. 힘들지만 가치가 있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달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로서 훈련을 받는 이야기라고 있습니다. 처음에 광야 훈련이 힘드니까 자주 원망하곤 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서 홍해바다를 건너 본격적으로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먼저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를 원망하였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제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오아시스 엘림과 시내산 사이의 신광야였습니다. 때는 애굽에서 나온 둘째 십오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1)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이유는 말씀드린 것처럼 먹을 양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감성을 섞어서 읽으라)

16:3절을  다시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회중이 주려 주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드니까 거짓과 과장을 섞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였기 때문에 고기 가만 곁에 앉아 고기를 실컷 먹고, 떡을 배불리 먹었을 없었습니다.  온갖 학대와 핍박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렸고, 자유를 박탈당한 대가로 약간의 고기와 빵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힘든 생활을 하다보니,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이 나았던 것으로 착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고나서 힘들어질 , 예수 믿기 전의 생활이 나았던 같이 착각이 들어서 옛날을 동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과거가 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힘드니까 괜히 과거를 미화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이스라엘 회중을 벌하지 않으시고, 책망 대신에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때부터 광야 40년의 가장 지속적인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아침에 하늘의 만나가 이슬처럼 내렸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지면에 내렸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을 먹이신 것은 홍해바다와 같은 장엄한 기적은 아니라고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날마다 경험하였던 놀라운 기적이라고 있습니다.

만나 – “이것이 무엇이냐?” 히브리어로 ?”라는 뜻입니다. ‘-무엇이냐, - 이것이라는 뜻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은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본문의 설명에 의하면, 밤에 이슬과 함께 내린 것인데, 이슬이 마른 후에 보면,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깟씨(또는 고수씨) 같이 희고 맛은 섞은 과자 같다고 했습니다.(14,31) 만나는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이집트에서 나온 1개월 신광야에서 내리기 시작해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내렸습니다.

만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양식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벌레나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하지만, 많은 분량이 40년간 내렸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메추라기는 자연의 이치로 설명할 있습니다. 메추라기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오가는 철새로서, 여름에는 유럽, 겨울에는 아프리카에서 보내는 새입니다. 그래서 봄에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데, 시나이 반도에 이르러서는 메추라기들이 힘이 빠져서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녁 때에 사람들이 지쳐 날지 못하던 메추라기를 손으로 잡았다고 설명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서 굶주린 시점에 많은 메추라기 떼가 몰려온게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중에서 주로 만나에 관한 이야기만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추라기는 과학적으로 설명해 있지만, 만나는 불가능합니다. 만나는 매일 아침에 내렸으나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만나가 40년간 지속적으로 내렸다는 것은 어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할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내려 주신 양식이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먹이신 이야기는 가지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도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처럼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십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먹을 , 마실 , 입을 물질적인 문제에서 초연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상 물질 문제로 염려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고백할 ,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먹을 양식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먹이시기도 하시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먹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결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내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6:28-30)

히브리서의 말씀,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4:11-12,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1-12)

고백 후에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있느니라”(4:13)

바울은 선교할 때에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물질이 있고 없고에 달려 있지 않고, 능력 주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계 선교에 헌신하면서 필요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19세기 허드슨 테일러- Faith Mission 실천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도 미리 손을 벌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께만 의존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중에 수백 명의 선교사들이 중국 내지에서 살며 복음을 전할 있도록 공급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먹고 입고 사는 문제로 이상 염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간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있으면, 정당하게 많이 버시고, 하나님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많이 사용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돌봐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이신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테스트를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테스트(test) 낙방시키기 위한 테스트가 아니라 합격시키고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8:16)

 

본문 16:4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거둘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칙을 지켜야 했습니다.

 

(1)    날마다 나가서 일정한 양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하루에 사람이 오멜(2리터) 거두라고 했습니다. 가령, 식구가 다섯이면 다섯 오멜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2)    욕심으로 너무 많이 거두어서 다음 날까지 남겨 두면 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다음날 까지 남겨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19-20)

(3)    안식일 날에는 평일보다 배의 만나를 거둘 있었습니다.  안식일 날에 거둔 만나는 안식일에  벌레도 생기지 않고, 상하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4)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에 순종했을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욕심으로 많이 거두어서 아침까지 남겨두었다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고 안식일에도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책망하셨습니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28)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지시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만나는 매일 내리는 양식이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식일에는 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준수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특히 안식일 법을 준수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이 오늘 본문입니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십계명 중에 4계명으로서, 20장에 가면 다시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계명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만나를 내려주신 사건을 통해 계명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주일)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가?

(1)    우선, (2)  하나님이 6일간 천지 창초하신 칠일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안식일에는 하나님이 만나를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

(2)    둘째, 안식일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주인공이 되시는 날입니다.

(3)    셋째, 안식일 법은 가장 기본적인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 일주일 7 중에6 일하고, 하루는 쉬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는데, 제도가 본문의 광야의 때에 만나를 통해  확실히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신 것은 건강 상의 이유뿐 아니라 주일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지키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주일) 지키는가 지키는지를 보면, 다른 계명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를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계명이라고 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어떤 사람의 신앙 상태를 진단할 , 하나를 보라고 하면, 주일을 지키고 있는지, 예배 생활은 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가지를 본다면, 헌금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경제 문제까지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를 다루실 , 문자적으로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고 비판 받으셨을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아가서 진정한 안식일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일에는 세상에서의 일은 멈추지만 영혼을 구원하고 섬기는 일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으로써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간 만나로 먹이신 사건은 사람이 육의 양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내린 만나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이신 이유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8:2-3절입니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음이 어떠한지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주리게 하시다가 만나를 먹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임을알게 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 광야에서 40 금식하실 , 마귀에게 가지 시험 중에 시험을 물리치실 ,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마귀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시험을 물리칠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라 하였느니라”(4:4)

 

여러분은 먹을 육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십니까? 머리로 받아들일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날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나는 매일 내렸습니다. 매일 먹어야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해야 합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 날마나 영의 말씀을 먹는 외에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예수님은 만나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47-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살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이 영의 양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을, 영생을 지금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자는 주리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만나보다 위대한 것은, 광야에서 사람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1:25-26)

 

여러분 중에 아직까지 우리가 예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분이 있다면, 아침에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있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있기를 축원합니다.

 

넷째로, 출애굽기 16, 만나를 내려주신 사건에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은 만나를 오랫동안 보관하라 말씀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만나를 오멜에 채워서 대대로 보존하라고 명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아론에게 항아리를 가져다고 만나 오멜을 담아서 여호와 앞에 두어 대대로 간수하라(16:32-33)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론이 모세의 지시대로 만나를 담아서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간 광야에 사는 동안 만나로 하나님께서 먹이셨다라는 기록으로 출애굽기 16장이 끝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 하늘의 만나가 그치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교육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은혜를 잊고, 얼마나 쉽게 근심, 염려에 빠지고, 얼마나 쉽게 불평에 빠지는 지를 아시기 때문에, 만나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하늘의 양식으로 먹이셨음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살고 있습니까? 추수감사절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 성경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함께 하시고, 돌보신 하나님은 지금도 돕고 계시고,장래에도 분명히 함께 하시고 돌보실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가지를 요약하면,

(1)    첫째,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성도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환경에 처하신 분들이 있다면 전혀 염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먹이십니다.

(2)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순종하며 사는 법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특히 주일을 지키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울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항상 순종하려는 태도로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3)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육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 특히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영적으로 건강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외에 다른 좋은 길은 없습니다.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잘못들면 멸망하듯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가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