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하나님께 감사 드릴 것이 많은 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여름 단기 선교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5월의 케냐 단기 선교, 그리고 뉴멕시코 나바호족 단기 선교, 그리고 쿠바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뿌린 복음의 씨앗들이 자라서 결실할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지난 주에 가족 수양회와 청년부 코스타 집회를 통해 영적으로 회복된 분들이 있습니다. 또는 가족 또는 개인적으로 쉼을 통해 영과 마음과 육체가 회복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하지만, 또한 작은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것도 감사하지만, 사막에서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내려 주시는 것도 감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고 예배할 있는 특권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날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는 일상의 은혜에 대해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얼마나 쉽게 은혜를 잊고, 쉽게 불평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넜을 때에만해도 감격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미리암과 여인들을 소고치며 춤추며 신나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찬양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할 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얼마 후에 불평하였습니다. 홍해에서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물을 찾지 못하다가, 마라라는 곳에서 물을 발견하고 좋아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없게 되자, 모세에게 원망을 것입니다. 때문에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한 것은 하나님께 원망을 것과 같습니다.

 

15:22-24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곳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우리는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으로 불평을 잘하는 민족이구나라고 생각을 갖지 않을 없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불평하였습니다. (모세오경에서 어떤 사람이 세보니, 열한 개의 불평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번째 불평이 아닙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 앞은 바다로 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의 최정예 부대가 추격해 , 두려워서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이끌고 와서 죽게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 있을 , 그냥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애굽인의 노예로 사는 것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 하지 않았느냐?”라고 했습니다.(14)

15 본문에서는 때문에 불평하였고, 16, 다음 살펴 보려고 하는 1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음식 문제로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을 때와 빵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우리를 광야로 이끌고 와서 여기서 죽게 하는구나!” 라고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는 출애굽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민수기11장부터 21 사이에 많은 원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강하게 원망하였습니다.

출애굽기의 원망 이야기와 민수기의 원망이야기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전혀 책망하지 않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원망을 받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해하시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실패를 통해 배우고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어린 이와 같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실수하고, 어린 아이가 운다고 매질을 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돌봐주고, 공급해주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민수기는 다릅니다. 민수기의 이스라엘은 이제 어느 정도 장성한 단계에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은혜 뿐아니라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시내산 언약이 있기 전의 이스라엘과는 달라야 했던 것입니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없고, 불평 잘하고 원망 잘하는 사람들,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있습니다. 어떻게 있나요?

22절을 보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광야를 없이 며칠을 걸었나요? 사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라에서 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없을 모세에게 원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원망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도 아니고 사흘 길을 때까지, 마라에서 물을 발견할 때까지 누구를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물없이 사흘을 가면서 불평하지 않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루만 없이 사막을 걸으면 불평이 나올 같습니다.)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현대의 우리들이 불평을 하고, 언제 불평을 합니까? 우리가 쉽게 불평이나 원망의 죄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면, 환경 때문입니다. 결핍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을 , 습관처럼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결핍이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 때문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쉽게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의 의미, 고난의 유익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불평합니다. 임신이 불편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을 알기에 임신 사실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감사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고난, 고생에 대해 무조건 원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흔해서, 그리고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거의 의식을 하지 않고 살지만,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나 공기, 햇빛, 밥이나 빵과 같은 음식 등입니다. 너무 귀해서 값을 매길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특히 물은 가장 필수적입니다. 인간의 몸의 70% 물로 이뤄졌다고 정도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없습니다. 밥은 며칠 금식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물은 사흘 정도만 마시지 않아도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가장 흔한 주제가 물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물과 물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물에도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라고 똑같지 않고 맛있는 물이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규태씨에 의하면, 한국의 물맛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1) 외국 물맛보다 한국 맛이 짜다는 것입니다. 염분 농도가 70ppm으로 외국 하천수 평균치보다 30ppm이나 적다는 것입니다. 2) 이에 비해 맛을 내고 자양을 주는 규산은 지질 때문에 외국 하천수의 평균치보다 10ppm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산 쌀이 외국산 쌀보다 맛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한국의 물은 급류로 인해 산소를 많이 보존하고 있고, 석회암 지대가 많지 않아 칼슘이나 마그네숨 농도도 평균치보다 12ppm 낮아 마시기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이곳 알라바마의 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봅니다.

 

이렇게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없을 ,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물이 없을 불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원망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없는 광야를 사흘 길을 걸었고, 마라 이르렀을 , 물이 써서 마실 없자 원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였더라면 원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 하나님께서 지시한 나무를 통해서 물을 물로 바꿔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얼마 후에는 오아시스 엘림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둘과 종려 나무 70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핍된 환경에서나 고난 중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보여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수는 오늘 우리들이 하는 실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잊고, 불평할 있다는 것입니다.

(2)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고 인내하면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까지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환경에 좌우되는 신앙은 아닌가?” “나는  축복 자체에 매달리는가? 아니면 축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가?” “일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어떤가?”

 

(여러분의 자녀가 엄마나 아빠보다 선물에만 집착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선물을 주면 좋아하다가 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슬프지 않을까요? 마음이 씁쓸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염려나 불평보다는 기도가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때문에 모세를 원망하였지만, 모세는 어떻게 했나요?  25,여호와께 부르짖었다 했습니다. 부르짖었다는 것은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었다는 것은 또한 믿음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아무에게나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부르짖을 있습니다.(Cry out)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있다는 것은 크리스천의 가장 특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특권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자상한 아버지가 자녀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의 외침에 대해 항상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응답해 주십니다.

4:6-7절을 보세요. 기도에 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할 마음의 평강을 주시는 것이 기도 응답의 싸인입니다.

29:12-13절을 보세요.나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33:3절을 보세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구절보다 바로 구절이 중요하다고 있습니다.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신뢰할 있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모세의 부르짖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주신 방법은 나무를 물에 집어 던지는 이었습니다.

15:25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기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여기서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분들은 이것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석합니다. 나무가 물을 달게 변화시킨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는 자들의 삶을 축복된 삶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상 정죄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를 영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라의 물을 물로 바꾼 것은 사실은 나무의 효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하나님이 바꾸어 주신 것이지, 나무 에서 능력이 나온 것도 아니고, 모세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고, 변화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라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 15:26에서 순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말씀은 크게 부분으로 나눌 있습니다. 명령의 말씀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시는 말씀과,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질병이 없게 하고, 병에 걸릴지라도 치료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가장 먼저 배우길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배우기는 어렵지만, 배우면 매우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믿음과 순종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와 비슷한 기적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입니다. 기적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예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부탁한 말씀과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이야기입니다.

너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당부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물을 항아리에 채우고, 떠다 연회장에게 주라고 했을 때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결과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자시에 대해 모세가 순종하였더니 물이 치료되어 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변화를 낳습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신명기 28 축복과 저주의 장에서도,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입니다.

28:1, “네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위로와 축복을 말씀을 주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1:5-6a절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 평생에 능히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그런데 1:7-8절을 명령의 말씀입니다. 명령에 순종하면 형통하게 것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모세가 네게 명령한 율법을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율법 책을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길이 평탄하게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에게 형통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온전히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순종이 건강의 비결이며, 5계명을 지키는 것이 장수와 하는 일이 되는 비결입니다.

 

인간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질병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세상에 수많은 질병이 있습니다. 병의 종류만도 수천 가지는 것입니다. 육체적 질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 정신의 , 영적인 병도 있습니다.

인간이 땅에서는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병들고, 늙고, 죽습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피할 없는 운명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니라 인간의 질병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인간의 치유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구절 이사야53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것입니다. 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셨을 아니라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말씀으로 고치셨고,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치유되었고, 병자가 예수님의 몸에 손이 닿아도 치유되었습니다.

마가복음1:32-34절에서는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동네가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확실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면 건강하고, 질병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있습니다.

지난 크리스찬 타임즈에 보니,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테네시 반더벨트 대학의 마리노 브루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교회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것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중년 성인의 경우, 사망률을 55% 낮추었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다니지 않은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두배 이상 사망률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찬타임즈 6/24/2017)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문자적으로 전혀 병에 안걸린다든지,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영혼의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늙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영생을 소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생명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영생을 누리게 것이 크리스천들이 받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은 죽은 후가 아니라 이미 지금부터 누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계시된 하나님은 또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준비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속해서 광야만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오아시스를 만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라에서 물이 써서 마실 없을 , 물을 물로 변화시켜 마실 있게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수르 광야에서만 걷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엘림의 오아시스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속에서 훈련받게 하시면서도, 오아시스와 같은 곳에서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인생은 항상 길로만 걸을 없습니다. 광야를 걸어야 때도 있습니다. 마실 없는 쓴물로 인해 고통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물도 단물로 바꿔주시고, 사막에도 오아시스를 준비시켜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악도 선으로 바꾸실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지날 , 불평하기 보다는 인내하면서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안아도 얼마 후에는 오아시스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관점이 중요합니다. 어느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느냐? 부정적으로 미래를 보면, 불평이 나오지 않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긍정적으로 보면, 인내할 있습니다. 감사할 있습니다. 기대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확신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막을 지나게 하실 때엔 반드시 앞에 오아시스를 준비시켜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물은 물로 바꾸어주실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요, 우리가 신뢰할 있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고난은 터널이지 굴이 아니다.” 끝없는 터널은 없습니다. 터널은 지나가면 다시 밝은 빛을 있습니다.

한국에 최근에 서울 - 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에서 속초까지 90분정도에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35개의 터널이 있는데, 중에 한국에서 제일 인제 양양 터널이 있습니다. 11km 거리입니다.

서울에서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35개의 터널을 지나 90분을 달리면 시원한 동해바다가 보이는 것입니다. 더널을 통과할 때마다 불평하는 운전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터널이 오히려 길을 단축시키고, 터널이 목적지에 빠르게 이르게 하는 유익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신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고난이 여러분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터널을 지나 가운데로 인도될 것입니다. 인생의 물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을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실 있는 분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걸음 걸음 앞으로 나아갈 있기를 축원합니다.광야 길에도 하늘 만나가 내리고, 물이 단물로 변할 있고, 오아시스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