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최대의 장점이자 약점은 뭐든지 빨리 빨리 하려는 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나갔더니, 뭐든지 빨랐습니다. 엘리베이터도 빨랐습니다. 짜장면을 시켰더니 오분도 안걸려서 나오는 같았습니다.

세계 역사 아프리카처럼 가난했던 나라가 50 만에 선진국이 나라는 오직 한국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발전해 왔는지 모릅니다. 미국까지 와서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여러분이 증인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빨리 빨리 정신이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빨리 성급하게 하다가 부실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 보지 못할 있습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빨리 빨리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응답을 조급하게 바라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신앙 인격의 변화는 결코 속성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서둘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시고, 하나님의 Pace대로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 모세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음으로 실망한 그들에게 결코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모세와 아론이 이집트 바로왕을 찾아간 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벽돌 만드는 노동에 시달렸는데, 모세가 나타난 후로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짚은 주지 않으면서 전과 같이 벽돌의 수량을 맞추라고 강요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밭에 나가 대신 곡초 그루터기를 직접 주으랴, 벽돌을 찍어내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을 보면서 모세는 더욱 마음이 괴로왔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에게 전달하면 바로가 즉시 순종할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스라엘의 형편은 더욱 어렵게 것입니다.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세를 원망하게 것입니다.

 

모세는 모세대로 좌절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 없었던 것입니다.

5:22-23,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백성을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허락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구원하시려고 하면 하실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난 속에 놓아두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늦추시는가? 즉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곧바로 건져내지 않고 어느 기간 동안 머물게 하신 이유는 크게 가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첫째로, 고난 속에서 신앙이 연단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은이 뜨거운 속에서 깨끗해지듯이 신앙도 고난 속에서 연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이집에 노예로 팔려가게 하시지 않을 수도 있으셨고, 감옥에 갇히지 않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음 요셉이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에서 연단받아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윗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에 실제로 왕이 되기까지 10년간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장인이기도 했던 사울 왕을 피해서 광야로 가야셌고 또한 블레셋 땅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날마다 불편하고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신앙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난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고후1:8-9,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 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의 압제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겸손해져야 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동안 바로의 압제 속에 있게 하신 이유는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에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왕이 자신의 권력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자,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가 고집을 꺽지 않고 계속 거역할 때마다 재앙을 추가하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세상에 우리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집트에 내린 가지 재앙은 바로의 완악함, 불순종 때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고난 속에 머물게 하실 정도로 우리가 겸손하게 되어 주님 성품으로 변화되는 , 주의 이름이 세상에 선포되고 주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고난이 생기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점에 있어서는 옛날 사람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입에 쓰면 뱉고 달면 삼키듯이 고난은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속성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모세가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으면서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걱정하지 말라, 이제 내가 하는 것을 너희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6: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 자신이 하심으로써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지 않을 없게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좌절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약속을 기억하라고 하시며 위로하였습니다. 고난 속에 있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보다 위로가 되는 이름은 없습니다.

6:2-3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란 이름은 스스로 계신 ”, “나는 나다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족장 시대엔 계시되지 않았던 이름인데, 모세 시대에 처음으로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 절대자라는 뜻이 있으면서, 특별히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는 관계적 하나님,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임은 타나내주는 이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니까 이제 걱정하지 말라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내셨습니까?

6:4-5절에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해 내셨습니다. 6:6-7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사람의 무서운 밑에서 빼내주시겠다고 거듭 약속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고,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특별한 관계 맺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팔과 여러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

 

여기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계시하시고 계십니까? 무거운 밑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를 빼내 주시는 분으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참으로 은혜롭고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이집트인들의 노예로서 고통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는 것은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폭군과 같은 , 무서운 분으로 믿는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은혜로우신 ,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으로 믿으면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의 태도가 다릅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감사 때문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이집트인의 무거운 밑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주시고, 나아가 가나안 땅까지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깊은 고난 속에 있을 때에는 자꾸 하나님의 이미지가 심판하시고 책망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로 생각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설명해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잘못에 빠졌습니다. 6:9절을 보세요.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고난에 대한 옳지못한 반응이 가지가 있습니다.

(1)    부정과 회피는 고난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고난을 무조건 피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일시적인 미봉책은 될지 몰라고 고난을 경감시키지 못하고 가중시킬 있습니다.

(2)    누군가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도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3)    조급한 마음을 갖는 것도  오히려 일을 그르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어떤 반응일까요?

첫째로, 선한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선의 것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생선 대신에 뱀을 주거나 대신에 전갈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11:11-12)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8:28)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힘든 것은 고난 자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은 느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고  버리신 느낌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점도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시며,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둘째로, 고난을 기회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기회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지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할 있는 기회입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해 귀로만 듣다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42:5)

인격이 성장할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가장 많이 변화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1:2-4절은 우리가 명심해야할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고난이나 시련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해 바른 반응을 하고, 인내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원망과 불평, 부정과 회피를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유익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첫째 이유가 영적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속에서 어떤 변화, 어떤 성장과 성숙을 이루길 원하실까요? 우리는 막연하게 변화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기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길 원하십니다. 자신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십니다.

(2)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 사고를 하고,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합니다.

(3)    유한한 생에 집착하기 보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땅보다 하늘에서 받을 영광이 훨씬 큽니다.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

(4)    손을 움켜지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이 본을 보였습니다.  

20: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손으로 나와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5)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점에 대해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6:32-36,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을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을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코리 여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만일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절망할 것이다. 만일 우리 내부를 들여다 보면 낙담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안식할 있다.”(목적이 이끄는 , p.262.)                                                                               

 

역사상 예수님만큼 억울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은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예수님을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고난 속에 있을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고난을 인내하셨을까요?

 

예수님 오시기 700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마치 깎는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십자가를 지면서도 잠잠하였다고 미리 보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53: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깎는 앞에서 잠잠한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실 있었던 것은 앞에 있는 기쁨 위하여 참았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순종을 본을 보이셨고, 섬김의 본을 보이셨고, 용서의 본을 보이셨고, 인내의 본도 보이셨습니다.

고난을 불평하거나 누군가를 원망의 기회로 삼기 보다, 고난을 신앙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삼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성품이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닮을 수만 있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면 그것이 우리가 사생자가 아니고 아들임을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릇 고난(징계) 받을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12:8,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살고, 바르게 사는데도 환난이 닥쳐오고 고난 속에 있게 때엔, 낙심하지 마시고, 고난으로 열릴 의와 평강의 열매를 생각하며 인내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하시며 감사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