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미국에서 어머니 날이고, 한국에선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세상에 어머니라는 단어보다 가슴 뭉클하게 하고 정감이 가는 단어는 없는 같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하나 읽어드리고 설교를 이어가겠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찬밥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후론/ ! / 엄마는 그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집 『엄마는 그래도 되는 알았습니다』 (2002)

 

자녀를 낳고 기르고 돌보신 우리 어머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축복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크게 가지 소중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 후손이 언젠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것이다”(17:8, 22:17)

  하나의 중요한 언약이 있는데, 그것은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받을 이란 약속입니다.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450 출애굽 때부터 구체적으로 성취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출애굽 당시에 장정만 60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장 중요한 역사입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 이야기의 모형입니다. 우리는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이야기가 드디어 출애굽기 5장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남들이 보면 쉬워 보여도 직접 해보려고 하면 어려운 것입니다. 사업도 어렵고, 공부도 어렵습니다. 농사도 어렵습니다. 결혼생활도 생각보다 어렵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도 그렇습니다. 전도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

그러니 이집트에서 200만명이 넘는 민족을 이끌어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5:1절을 보세요. “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모세와 아론은 마치 바로가 하나님의 신하라도 된듯이 당당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은연 중에 성경에서는 세상에 하나님보다 강한 권력자는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권력과 악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닙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죠라고 했나요? (이름-직책- 바로인데, 순종은 바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어떻게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합니까?

 5:2절을 보세요.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자기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겠다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건 모르건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은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고, 하나님을 피해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명령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겠다고 해도 얼마 후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이상 거역할 없게 되는 상황을 만나게 것입니다. 하나가 죽음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가 거절했다고 곧바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5:3절입니다. “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러자 바로가 드디어 본심이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려고 하지 않은 진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5:4-5절입니다.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바로가 이르되 이제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는 앞에서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다가, 이번에는 많은 노동력을 잃을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역이란 말을 사용함)

사람들이 하나님 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결코 잃어버리기 싫어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누구보다도 이런 인간의 마음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사람이 주인을 섬길 없다고 하셨으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4)

마귀에게  돌로 떡덩이가 되게 보라고 시험받으셨을 ,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라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이나 물질, 소유의 문제가 인간의 모든 욕심의 핵심임을 간파하셨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왕은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피할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명령에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다. “60 장정의 노동력을 잃는다 것이 얼마나 경제적 손실인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몰랐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가서 절기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울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게으르므로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라고 말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게 하였습니다. 악의 특징은 악은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악은 스스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악을 과소평가 하지 마십시오.

바로은 강제 노동 감독관들과 작업 반장들(기록원들) 불러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혹독하게 다루라고 명했습니다. 이제 벽돌을 만들 사용되는 짚은 주지 않고 벽돌의 수효를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얼나나 힘들었겠습니까? 히브리인들은 짚이 없으니 곡식 그루터기를 주어다가 짚을 대신하여 벽돌을 만들었지만, 할당 량을 맞출 없었습니다. 강제 노동 감독관들이 이제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작업 반장들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 반장들(기록원들)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걱정되지 않을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작업 반장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찾았나요? 모세와 아론을 찾았나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권력자 바로를 찾아가서 항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을까요?

5:15-16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

세상 권력자 바로는 결코 히브리 노동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자비와 정의에 호소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짐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5:17-18절을 보세요.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여러분, 공의로우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분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 권력은 무자비하며 불의합니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의 짐을 가볍게 것이 아니라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억울한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겼을 , 세상의 권력에 가서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구원자, 참된 도움이 되십니다.

예례미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위태한 상황에서 하나님보다 강대국, 권력을 의지할려고 , 그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호소하였습니다.

17:7-8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 건건한 ,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가에  심어진 나무가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다윗도 시편33편에서 마찬 가지의 말씀을 했습니다.

33:16-19절에서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을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는 군마가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해 있습니다.

세상 권력을 의지하는 결코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나은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예화) 유다 말기의 역사- 유다왕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외면하고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의지하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하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간증-저는 얼만 한국에 나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만나야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시간과 재정을 많이 세이브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주인되신 주님을 의지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이든 작은 문제이든 하나님께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인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가 어렵게 되는 같이 보이자,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이 이제 바로가 아닌 모세와 아론에게 향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 반장들은 바로를 찾아아서 어떻게 그렇 있느냐고 항의하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너희가 게으르기 때문에 광야에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고 하면서, 이제 가서 일이나 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 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17-18)하고 하였습니다.

바로왕은 늑대처럼 코너에 몰린 이스라엘 노동자들을  물고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은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모세와 아론을 붙잡고,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5:20-21,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이스라엘의 작업 반장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1)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대, 핍박, 오해, 고난이 밀려올 있음을 몰랐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고난이 닥쳐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반대가 있고,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4)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권력자 바로를 먼저 찾았고, 하나님의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의로운 길을 가는데도 고난을 만나게 , 크게 가지 상반된 해석이 있고,  상반된 반응이 있습니다. 고난을 좋아하지 않고 무조건 피하려고 하는 태도와, 고난의 유익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감사하며 사는 태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집사님, 암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고난이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 가까이 가게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마음에 평안이 있고, 얼굴도 밝아진 모습을 보면서, 집사님이 고난에 대해 바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치시켜 주시길 기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복음을 위해 헌신했고, 누구 보다도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매도 많이 맞고 여러 감옥에 갇히도 했습니다. 바울은 고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사도행전 20장과 21 부근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 여러 사람들이 만류하였습니다. 특히 아가보 선지자에 의해 예루살렘에 반드시 체포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것을 알게 되었을 , 울며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세요?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울어 마음을 상하게 합니까? 나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습니다.”(21:13)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이런 고백도 했습니다.

20:22-24, “보라 나는 이제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각오를 가지고 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고, 선을 행하며 산다고 세상에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와 핍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이 이것을 가장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던 분입니다. 항상 옳으셨습니다. 그러나 역사 예수님 만큼 고난, 핍박, 조롱,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분은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하는 ,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떻게 쉽게 되어질 있겠습니까? 완악한 바로왕의 반대가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죠.

 

마지막으로 다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점은, 그렇다면 고난이 찾아오고, 일이 맘대로 풀리지 않을 , 환난과 핍박이 일어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모세와 아론처럼 해야 하는 것입니다. 5:22-23절을 보세요.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백성을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 이스라엘이 당한 곤경, 어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키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불평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찾기보다 힘있는 권력자를 찾아가서 해결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풍랑으로 죽게 되었을 어떻게 했나요?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 해결하려 하다가 없게 되자 피곤하여 주무시는 예수님을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풍랑을 꾸짖으시자 즉시 잔잔케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이든 문제 해결의 진정한 키를 가지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우리 하나님은 찾으면 만나 주시고, 부르면 대답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찾았을 , 하나님이 답을 주셨습니다.

6: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강한 이란 말씀을 반복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 우리 조국과 민족의 문제- 답답합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민족 통일을 허락하실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개인의 문제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없는 나무 작은 문제 없고, 하나님이 해결하실 없는 너무 문제 없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고난과 핍박이 찾아 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잘못된 해석과 반응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문제이든 하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주님을 계속 신뢰하며 인내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둠이 짙어지면 새벽이 가까이 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가 완악하게 나올수록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소망을 잃지 마시고 희망을 품으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