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에는 해를 참으로 어렵게 어렵게 지내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중에는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해를 살아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이룬 분들, 바램들이 이뤄셔서 감사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세웠던 계획대로 되지않고, 원했던 소원들도 아직 이루어져서 답답한 마음을 갖고 자리에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볼 , 주님께 죄송스럽지만 새해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새마음을 품고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나이가 늘어갈 , 후회나 아쉬움, 열등감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마냥 기쁘기 않고, 덤덤한 경우가 있는 같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어렸을 , 젊을 때는 새해를 맞거나 설을 맞이할 , 얼마나 기대감이 있었고, 좋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느낌이 별로 없고, 죄책감이나 열등감, 무력감과 같은 감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 실망감이 큽니다. 더욱더 주님 닮아가고, 더욱더 성숙해 져야 하는데, 해마다 별로 변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 중에서도 지난 해를 돌아보면서 후회나 낙심, 절망감 안고 자리에 오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연초에 기도하겠다고 했는데, 거의 기도도 하지 못했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려고 했는데, 거의 읽지 못했고, 영혼이라도 전도해서 구원해 내려고 했는데, 아무도 전도하지 못했고, 가정에서, 직정에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마음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은 누군가에 대한 미움, 시기, 질투, 분노로 인해 힘들어 하는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부담을 안고 자리에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한 것은, 오늘 밤에 저와 여러분이 다시 한번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과 기대를 가지고 왔든, 새해를 주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맞이하겠다고 하신 것은 너무나 결정입니다.

인생은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날마다 바른 선택을 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다보면, 흐름에서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날마다 옳지 않은 선택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인생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좋은 선택을 하셨으니, 새해에 날마다 바른 선택을 하며 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떠나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오늘의 우리들처럼 후회, 절망, 죄책감 등으로 시달리던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새롭게 시작할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21: 2-3절을 보세요.

시몬 베드로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제자들에게 두번 나타나셨고, 오늘 본문은 번째 나타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 예수님에 대한 확신은 확실해졌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에 대해선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특히 베드로-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까지 했는데, 예수님이 체포당하실 , 예수님을 모른다고 번이나 부인하였던 일로 인해 심한 자책감에 빠지게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을 없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에서 이룰 중차대한 사명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책감과 두려움이 생기면, 현실에서 회피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과거로의 도피, 내지 회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 잡던 자리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니, 다른 제자들도 나두, 나두 하며 따라간 것입니다.  우리가 바닷가로 휴가 가듯이 놀러 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를 생각한 것입니다. 약간의 현실도피적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했다가 여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한 한심한 자신을 보면서 자신감을 잃은 같습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지며 수고하였지만, 물고기를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날도 그랬었든데, 비슷한 경험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은 현실도 어렵지만, 주님을 따르는 일을 그만두고 과거로의 회귀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빈그물을 보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절감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죄책감, 두려움, 게다가 밤새 고기 마리도 잡지 못한 허탈감에 시달릴 때에, 다시 신기한 일을 체험하였습니다. 아직 주님이신지 모를 , 주님이 바닷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 : “없습니다.”

예수님 :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여러분,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마리였나요? 153마리였습니다. 그물 던져서 153마리를 잡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건은 처음 제자로 부르실 때의 상황을 생각나게 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밤새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는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5장에서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오른 편이 아니라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지난 동안의 불순종, 불충, 게으름, 어리석음, 부족함 등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하며,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고, 특히 자신에 대해 실망하는 우리들에게도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은 다시 과거로 회귀할 없습니다. 믿지 않던 때로 돌아갈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비록 완전하진 않아도 조금씩 변화되면서 천성을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은 자는 결코 뒤를 돌아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이제 여러분, 옛날 믿지 않던 시절로 돌아갈 없습니다. 돌아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제자들의 경험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갈릴리 바다에 가서 밤새 고기를 잡으려 하였지만, 마리도 잡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 그물에 가득한 물고기를 잡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어부로서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쓸 때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헛수고이고,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함께 계시고, 말씀대로 하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는 체험 것입니다.

 

10:10절에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나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뿐이요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많은 열매를 맺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없음이라

새해에 예수님 안에서 퐁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열매는 무슨 물질적인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요, 기도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오늘 혹시 베드로처럼 죄책감, 자신에 대한 실망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염려, 부담 등에 시달리는 있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는 , 우리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 다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경험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을 아니라 추위에 떨고 있고, 배고픔으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위해 숯불과 빵과 구운 생선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의 적극성과 열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이 처음으로 바닷가에 계신 분이 주님이란 사실을 발견하고 주님이시다라고 하자,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을 베드로였습니다.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 내린 것입니다. 아직 해안까지 100야드 정도 남은 상황에서 이상 참지 못하고 뛰어 내려서 급하게 주님께로 것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반가워하였는지 행동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하셨으며,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신 후에는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장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섬김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현재 제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아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밤에 바다에서 씨름한 어부들이 얼마나 추웠겠는가? 얼마나 배고팠겠는가? 그래서 주님은 숯불을 피우시고 빵과 고기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신체적인 추위와 배고픔보다도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배반한 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어느 때보나도 춥고 배고플 때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회복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에서 숯불을 쬐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예수님은 책망 대신에 숯불에 빵과 생선을 구워주시면서 영적인 회복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입장에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시간 제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보였고, 섬길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새해에는 더욱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족들을 배려하고, 직장 동료들을 배려하고, 교회에서 서로 배려하는 새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계십니까?

혹시 과거의 어떤 죄나, 실수, 부족함으로 인해 좌절하고, 마음이 춥고, 어두운 상태에서, 또한 영적인 배고픔으로 인해 허기진 상태에서 나오신 분은 없습니까?

오늘 새해를 맞이하면서 주님께서 오셔서 마음을 따뜻하게 회복시키시고, 빛을 비춰 어둠을 몰아내 주시고, 영적인 만족함, 기쁨으로 채우실 믿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부어주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지 상상을 보았습니다. 그날 갈릴리 해변에서 새벽에 동터오르는 태양을 보며 제자들을 어떤 결심을 하였을까?

다시금 찾아오셔서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시고, 따뜻한 모닥불과 주님이 차려주신 빵과 구운 생선을 먹으면서 어떤 결심을 했을까?

이런 결심을 했을 같습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저희들이 뭐기에 택하여 제자 삼으시고, 부족함(허물) 투성이인 저희들을 끝까지 품으시고 사랑하여 주십니까? 춥고 배고픈 저희를 위해 친히 모닥불을 피우시고, 맛있는 조반까지 차려주셨습니다.

주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님의 꿈을  다시 붙잡습니다. 꿈을 위해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이제 이상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 자책하지도 않겠습니다. 이제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으로 충만케 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와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증인으로 살겠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다시 식탁을 대할 때까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습니다.

주님, 주님을 따르는 길이 춥고 위험하고 힘들어도 오늘 갈릴리 해변에서 주님이 베푸신 따뜻한 섬김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리겠습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

 

제자들이 함께 이런 찬송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찬송1)“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되돌아 서지 않겠네같이 불러 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식사 후에 베드로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다시 한번 제자로 부르시고, 목회 사명을 주십니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말고, 계속해서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다시 주시기 전에 여러 가지가 아니라 가지를 확인하셨습니다. 가지가 무엇입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사람들 보다 나를 사랑하는냐?”

번째 질문과 번째 질문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에 관한 질문은 주님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입니다. 에수님은 베드로가 다시 능력있는 사역자가 되는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지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온 우리들에게 주님은 다른 질문하시지 않고 가지 질문을 던지시는지 모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새해엔 나를 더욱 사랑하겠느냐?

 

베드로는 분명하게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주께서 아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일로 인해 자신에 대해서 자만을 내려놓고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21:17절을 보세요. 베드로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근심하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날 새벽에 제자들로부터 듣고 싶으셨던 고백은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좋은 고백은 사랑 고백인 믿습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사랑을 고백할 , 사랑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 가정에 사랑 고백이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에 대한 사랑 고백을 새롭게 하시며,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그날 제자들은 또한 모여서 이런 찬송을 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찬송2) “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사역을 시작하는 베드로에게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21:18-19절입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새롭게 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로서 새롭게 결단하고 나서는 베드로에게 죽음 이야기를 꺼내셨을까요?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결국은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희생 없이는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간증)시각 장애인이며 실로암 병원 원장으로 오랫동안 섬기신 김선태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하기 위해 사모님을 처음 봤을 , 가지만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질문이 뭔지 아세요?

만약에 당신이 공산당 병사에게 끌려서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 살려주고, 계속 믿겠다고 하면 죽일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라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죽이더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대답해서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7-8절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제 주님의 사명을 위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찬양을 많이 하게 되는데, 한곡을 부르고 싶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모인 제자들이 불러야 했던 찬송입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했으면 합니다.

(찬송3)“갈릴리 마을 숲속에서 주님 열한 제자 다시 만나시사 마지막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가라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세상 모든 영혼이 네게 달렸나니, 가서 제자 삼으라 나의 길을 가르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새해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혼 구원하시는 일에 헌실 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l  이제 2017년이 시작될 것입니다.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지 정도 결단을 확실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1)    주님처럼 이웃을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2)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시 하겠습니다.

(3)    자신의 영광이 아닌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아도 주를  위해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