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들을 맞아서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히 임하길 기원합니다. 올해 성탄절은 성탄절이면서도 주일이며 올해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항상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12 21(로마시대는 12 24일을 동지로 알았음) 지나서 날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12 25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4:2, 1:78-79) 예수님의 생년월일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예수님의 탄생의 해를 0년으로 정하고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날짜 계산이 조금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2000 전에 구약에 예언된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실 생일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에서는 간략하게나마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신학적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 없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헤롯왕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셨을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가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와서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보통 전쟁이든 운동이든 정치든 팀이 맞붙어 싸우듯,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크게 둘로 팀이 나누어졌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당혹해하고 원치 않았던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뻐하는 쪽에 서실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2장에서도 그룹이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메시야의 나심을 반대한 사람은 헤롯왕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오다가 사라지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나실 것으로 생각한 것이죠.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소동했다’(was disturbed) 것은 몹시 당황하였다는 것입니다. 왕이 버젖이 살아 있는데,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이 되겠습니까?

악한 헤롯은 미움, 분노, 적대감을 숨기고 동방 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 가거든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말했습니다. (8)

헤롯은 악한 마귀, 사탄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있습니다.

속에는 구렁이 마리가 들어있이었습니다. 속에는 거짓, 불의, 미움, 시기, 분노로 가득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빛의 천사처럼 가장한 것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속이고 죽이는 자입니다. 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였습니다. 4장에서는 예수님도 속이려고 시험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동방 박사들을 속이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악한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항상 진리 안에 행해야 하며,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2 마지막 부분에 보면, 헤롯의 본색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있습니다. 2: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때를 기준하여 살부터 아래로 죽이니역사 가장 끔찍한 어린 아이 살해 사건이라고 있습니다.

( 사탄이 예수님의 탄생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겠습니까? 사탄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영적인 공격이 있을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헤롯과 같은 정도로 그리스도를 대적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야의 탄생 장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그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을 , 지체없이 유대땅 베들레헴입니다. 미가서에 보면,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하였습니다.”

너무나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향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지식이 믿음으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머리로 성경에 대해 많이 알아도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있음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교회에 오래 다니시는 분들이 빠지기 쉬운 죄가 바로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 유대인들 중에 환영한 사람들보다 배척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을 시작하면서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9-12)

여러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이 동박 박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이 옮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나타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메시야의 탄생을 환영하고 반긴 사람들은 의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동방 박사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확률적으로는 예수님을 믿을 확률이 낮었던 사람들있습니다. 가능성이 낮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결국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가지 예물을 드릴 있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누구였을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을 ,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  페르시아 지방에서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있습니다. 박사 – Ph.D. 의미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들은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땅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다.

가지 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지 예물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예물은 각각 예수님의 신분, ,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신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왕적인 신분을 나타내 줍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믿었으며, 아기 예수께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유향은 일종의 향품인데, 예수님의 완전한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누구와도 견줄 없은 향기로운 삶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위인이라고 해도 예수님보다 완전하고 예수님보다 아름다우신 삶을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의 본을 보이셨으며,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이 되고자 함이셨습니다.

몰약 방부제로 쓰이던 약초입니다. 예수님의 장례 때에 사용된 물품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19:39-40절을 보세요.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가지 예물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삶을 사실 것이며, 어떤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동시에 가지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지 예물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물은 믿음의 예물입니다. 금과 같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 고백, 믿음의 고백이 귀한 예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지금은 단어처럼 붙여서 이름처럼 사용하지만, 원래는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시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주님께 향기로운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도 향기로운 예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찬송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요? 그러므로 찬송할 건성으로 해서는 안되며, 열심히 불러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향기로운 예물은 사랑의 예물입니다. 주님께서 아름다운 , 향기나는 삶을 사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대한 순종 ,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향기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느니라

고린도후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보다는 믿는 사람 통해서 하나님을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향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느끼게(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후2:15, 고후3:3)

성도의 기도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이 됩니다.  (5:8, 8:3-4)

계시록8:3절에 보면, 성도의 기도가 향연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오늘 성탄절 예배를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과연 해동안 생활을 통해 얼마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 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향기는 고사하고, 악취만 풍기진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 교회 청소년들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 행사(구세군 자선 남비) 열성껏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 작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낸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봉사들이 계석 확장되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물은 몰약, 소망의 예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에서 자유케 되었을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약속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 갖고 있게 되었습니다.(11:25-26)

평상시에는 소망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 , 소망이 있는 사람과 소망 없이 사는 사람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 바라보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갖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실한 소망 중에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 귀한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가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굳건히이겨내는 것을 보실 , 기뻐하십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고백, 신앙 고백을 새롭게 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이요, 왕으로 분명히 믿고 고백하실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각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으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향기나는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나쁜 냄새를 풍기는 않았는가 되돌아보며 반성하여, 새해에는 삶을 주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드리실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기도의 향연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사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 권력에 소망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헤롯왕처럼 완악해지지 않으며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무관심하지 않고 동방 박사들처럼 기쁨으로 예수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예물로 드리실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