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위대한 점은 사도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여러 권리들을 포기하면서 복음을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처럼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여러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사역할 권리를 포기하고 손으로 일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고전9:12)

  타락한 인간은 굉장히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소한 권리를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을 때, 순서를 양보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리를 포기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성경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양보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몇 개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우선적으로 선택권을 준 이야기입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13:9)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갈 때 한 고백도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권리 포기의 선언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려야 하리라”(요3:30)

  예수님의 권리 포기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빌2:6-7)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권리를 포기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볼 때,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는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보좌도 버리신 예수님, 목숨까지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도 작은 권리들을 포기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 우리는 이 땅에서의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늘의 상을 바라볼 때 당연한 권리를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하늘의 상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하늘의 상을 생각하며 기뻐하라고 하셨고, 남을 구제할 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이유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