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하탄에서 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개척해서 섬기는 Timothy Keller목사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둘째 아들이 탕자(잃어버린 아들)이고, 비유의 초점을 그 탕자에 맞추어서 해석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켈러는 이 비유에는 각각 다른 두 잃어버린 아들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뿐 아니라 맏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눅15:1-2절을 배경으로 들려졌기 때문에, 이야기 속의 둘째 아들은 세리와 죄인을 대표하고, 맏아들은 종교인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은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두 종류의 인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이나 종교, 도덕과 같은 것에서 벗어나 방탕한 생활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맏아들은 둘째 아들과 달리 종교, 율법, 도덕을 중시하는 모범적인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자식이 돌아왔다고 살진 송아지를 잡느냐’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버지를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해, 자기 의를 자랑하기 위해 산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둘 중에 누가 더 문제를 안고 있는 아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이야기 속에서 둘째가 아니라 맏아들이 더 문제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둘째 아들은 비록 탕자였고, 오랫동안 아버지 집을 떠나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와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이야기 속에서 아직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밖에 까지 나와서 화난 맏아들을 잔치에 초청하였지만, 그가 동생에게 베푼 아버지의 ‘은혜’를 이해하고 함께 즐거워했다는 결론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소위 세속적인 사람들, 죄인들보다 종교적인 사람들, 자기 의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을 비판하길 좋아하는 종교인들이 더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은 도덕, 율법주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