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피흘리시는 주님 때문에 슬피 우는 모습을 보시고, 주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눅23:28)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은 비록 고통이었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정해진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로 인한 심판 아래에 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울어야 마땅할까요?

  우리는 종종 중보 기도의 대상으로 몸이 아프거나, 북한이나 이슬람권의 그리스도인들,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할지 모릅니다. 북한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남한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 풍요 속에서 나태한 삶을 사는 미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울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갈수록 젊은이들이 신앙을 떠나서 세속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부부도 많아지고 있으며,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불신자로 남는 자녀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더욱 눈물로 기도할 때라고 믿습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북한과 같은 곳에서 핍박 속에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보다 한국이나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더욱 울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할 지 모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맞나요? 누가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할까요?

  신앙적 교만, 오만을 버리고 겸손히 자신의 신앙부터 되돌아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붙드시고 사용하시지만, 언제 하나님께서 그 촛대를 옮기실지 모릅니다. 스스로 인정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