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외면한채 겉에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환경에 따라서 일희일비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일이 풀리고 성공하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일이 안풀리고 몸에 질병이라도 생기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숨겨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 없이도 세상에서 일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저주일 있고, 반대로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지는 것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일 있는 것입니다.


헨리 블렉가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이란 책에서 환경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 속의 진리를 보여달라고 기도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인격체이며, 환경이 아닌 예수님이 진리입니다.(14:6)


번은 제자들이 해질 무렵 예수님과 함께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중에 풍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풍랑 속의 진리가 무엇인가요? 드러난 진실은 이제 우리는 죽었다입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풍랑을 잠잠하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진리는 뒤에서 잠이들어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진리입니다. 주님이 계신 풍랑을 만난 배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도 잠잠케 하실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환경만 보면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면 풍랑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있습니다. (4:25-41)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녘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 환경만 보면 절망적이었습니다. 빌립의 계산이 정확합니다.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환경 속에 계신 진리이신 예수님은 다르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능히 하실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 미국의 상황을 보면 답답하고 두렵고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 속에 계신 주님을 우리가 있다면,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볼 있습니다. 한국의 혼란스런 상황이 오히려 민족 통일을 앞당기고, 마지막 때에 진정으로 주의 나라를 위해 우리 민족이 귀히 쓰임 받게 되는 계기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새롭게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보며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 환경 넘어에 계신 , 아니 환경 속에 계신 진리를 보며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 비늘 덮인 눈으로 현실만 보고 좌절하기 보다는 비늘 벗겨진 눈으로 환경 속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소서. 드러난 현실만 보고 두려워하기보다 숨겨진 진실(진리) 보며 소망을 갖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