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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은 믿음으로만 건너는 강으로 믿음의 원리를 제공한다.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꼭 건너야 할 강이 요단강입니다. 이 요단강을 건넘은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요. 다음은 사십 년 동안의 징계와 연단과 시험을 마침이며, 이제는 본격적으로 악한 적과 싸우고 약속하신 기업을 위하여 전진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강은 반드시 건너야 할 강입니다.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하나님의 연단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합니다. 

 요단강의 영적인 의미 -   요단강은 반드시 건너야 할 두 가지 것들을 암시합니다. 객관적 구속사의 의미로는 성도가 육체를 벗고 천국에 들어가는 임종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의미는 참 믿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강의 교훈에서 참 믿음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요단강 너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복락이 있을지라도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처럼 그 예비하신 것을 누리는 방법이 바로 믿음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믿음을 마스터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령한 가나안 수준에서 살려면 이 요단강의 교훈을 잘 이수해야 합니다. 확실한 요단강적인 믿음만 소유하면 가나안 단계는 일사천리 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1.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는 연합에 기초합니다.  1                                                                                                                 여기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약에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유숙은 자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암시하며, 삼일 후란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여기 "더불어"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연합의 비밀을 가리키는 중요한 용어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새생명 그리스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모든 공효를 소유한바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 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포함시키셨다는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2.
믿음이란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3
절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언약궤가 나오는데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행동의 원칙이었습니다. 즉 언약궤가 머물면 이스라엘도 머물고 언약궤가 행하면 이스라엘도 행하였습니다. 또 이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했습니다. 즉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의 이동을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주권의 신앙입니다. 믿음이란 모든 일을 하나님 주권에 기초해야 합니다.

3. 믿음이란 체험보다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4:  여기 언약궤와 상거가 이천 규빗임은 체험보다 말씀에 설 것을 뜻합니다. 언약궤와 너무 가깝게 말라 함은 체험 위주의 신앙을 경계함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행할 길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에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체험과 상황과 경험과 상태에 기초되지 아니하고 말씀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광야의 환경과 상황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40년간의 방황은 곧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심령이 방황한다는 것을 잘 암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천 규빗이어야 하는데 여기 2는 증거의 수요, 천은 제한충만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료한 증거로 가득하면서 더 기록될 수 없는 말씀이니 이것은 성경을 뜻합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증거하시는 말씀으로 성령의 영감으로 충만된 책인데 더 이상 기록될 수 없는 기록의 종결성을 가진 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나가 보지 못한 길의 의미 역시 신앙생활이란 경험이 앞설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께서 이루신 공로에 기초하여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냐 상황이냐 진리냐 느낌이냐 이 둘 사이에서 진리를 택해야 합니다.

 3. 믿음이란 모험적인 순종입니다.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당시에 요단강은 모맥 거두는 시기라 물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요단에 들어서라" 는 이 명령은 불신자에게는 '요단강에 빠져 죽으라'는 말로 들리는 참으로 모험이 필요한 교훈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기적이 없으면 물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홍해와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홍해는 이미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갈라질 것을 믿고 강 속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말씀 더하기 행동입니다. 여기에는 대단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대개 믿음이란 믿어지는 것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믿어지든 믿어지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고 혹시 믿어지지 않으면 믿어라도 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 가지면 가나안은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우리 속의 죄악이 강력해도 이미 그것을 해결하셨다는 복음을 믿고 찬양하면 이겨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에서 이 절대적인 믿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요단강의 주된 교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리보다 환경을 더 바라보았기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랬기에 가나안의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믿어지지 않아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믿음의 은사란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어지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모험적으로 믿어드리는 신앙을 뜻하기도 합니다.

4.
믿음이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인간적인 열심을 큰 믿음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여기 언약궤를 따라가듯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회개한 바울이 맨 먼저 간구한 기도는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였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앞섰을 때 그 열정이 아무리 대단했을지라도 그것은 믿음이 아니오 도리어 자아만 키우는 훈련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보다 앞서 설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깨닫고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물어야 하는 것 입니다.

5.
믿음이란 변치 않는 진리에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17 
믿음이란 구약 용어로 '에무나' 인데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의 마른땅에 견고히 선 것처럼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와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끝까지 믿음에 서야 합니다. 4:17-22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했습니다.

 
가나안은 믿음이 없이는 건너갈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세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